PEOPLE

그들의 이력서

웃으며, 사랑하며, 꿈꾸며 이아람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이다. 대금, 창작, 무대, 그리고 한 여인까지. 그가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의 찐한 멜로 드라마, 올해를 넘어 흥행 질주가 예상된다.

Chapter 01신상털기

  • 이름이아람
  • 생년월일1981. 10. 23
  • 별자리전갈자리
  • 특기/포지션대금연주가, 작곡가, 프로듀서
  • 소속음악그룹 나무, 블랙스트링, 정음회
  • 별명없음..

Chapter 02인생이력

  • 2000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
  • 2004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 졸업
  • 2013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 졸업
  • 2002제18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금상
  • 2017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연주상(블랙스트링)
    제36회 KBS 국악대상 연주(관악)상
  • 2018제9회 여우락페스티벌 음악감독
바람곶과 블랙스트링
이 둘은 행운의 아이콘이자 내 인생의 역사 그 자체이다.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사회에 던져질 때, 원일 선생님의 러브콜로 '바람곶'이 결성되었고, 20대와 30대 초반을 제대로 바쳤다. 2012년 바람곶이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힘겨운 솔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때 허윤정 선생님의 제안으로 '블랙스트링'이 만들어졌다. 음악적으로는 너무나도 다른 색깔을 가진 두 팀이지만, 멤버 구성원 모두가 대체 불가능한 연주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개개인이 가지는 책임감이 어마어마하고, 그 책임감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혹은 해내야 하는) 지분 또한 같이 커진다. 또한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최고의 작품과 연주를 관객들에게 선사해야 한다는 공통의식 덕분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됐다. 인생의 멘토로 박용호, 원일, 허윤정 이 세 분을 꼽으니 '바람곶'과 '블랙스트링'이 내 삶 전반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왼쪽부터 블랙스트링, 바람곶
전통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
9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음악만 나오면 박자에 따라 몸을 흔들고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음악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부모님 덕분이다. 11살 무렵, 아버지께서 원장현 선생님 학원에서 취미로 대금을 배우기 시작하셨는데, 그때부터 집에 매일 대금산조, 청성곡, 시조, 수제천 등 전통음악이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왔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진지하게 대금으로 전공을 바꾸어 국악중학교를 들어가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어렸을 때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내성적이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뭘 시키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고 한다. 중학교 입시에 포함되어있는 '동요 부르기'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동네 뒷산에서 '혹독한 수련'을 거치고 국악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온전한 자의에 의해서 고른 악기가 아니기에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 재미와 사명감 없이 수동적으로 전공을 이어오다가 대학교 입학 후 박용호, 원장현 두 스승을 만나면서 대금과 전통음악의 재미에 빠지게 됐다.
나의 변곡점
2012년으로 기억한다. 김선정 안무가의 신작 음악창작을 '바람곶'이 맡기로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지인들이 이 기회에 음악감독을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금연주자에 머물러 있던 시기라서, 갑자기 중요한 책임을 진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바람곶'으로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공동창작을 해왔던 터라 음악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적었지만, 공연 전체를 꾸려나간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었다. 결국 음악감독을 맡기로 했고, 그게 결론적으로는 내게 좋은 계기가 됐다. 많은 분의 도움과 격려로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턱없이 부족한 부분을 치기 어린 열정으로 채웠던 것 같다. 그때 그 두려움을 돌파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쯤 머물러 있을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두려움이 큰 구멍 같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하나의 소실점일 뿐이었음을 알게 된다.
X라는 타이틀
'그들의 이력서'를 쓰면서 보니 지난 몇 년간 대략 70여 개의 크고 작은 작품에서 작곡과 음악감독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내와 야외,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경험을 쌓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게 어떠한 타이틀이 수식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나는 기획자라는 타이틀보다는 '기획을 하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감독이라고 칭함 받기보다는 '감독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하고 싶다. 스스로 부족함을 알기에 타이틀이 붙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여전히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고, 캐릭터를 찾아가는 중이다.

기억에 남는 작품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페스티벌 음악감독은 작품 음악감독과는 많이 달랐다. 전체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프로그래머의 역할부터 아티스트 섭외, 참여 아티스트와의 소통과 관객 관리, 그리고 내 이름을 걸고 만드는 공연까지 올려야 했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자리를 경험하며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티스트, 기획자, 제작자, 스태프, 관객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처음 여우락 페스티벌 음악감독 자리를 제안받는 자리부터 페스티벌이 끝나고 몇 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내겐 과분한 자리와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무엇보다 원일 예술감독님과의 협업은 앞으로 나의 음악인생에서 큰 자양분으로 남을 것이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뜻깊고 즐거운 작업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5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제작으로 만들어진 경복궁 음악회 <대금이 이끌다, 소리가 이끌다> 도 잊을 수 없다. 열흘이라는 장기공연에서 처음으로 총감독이라는 직함을 달게 되었다. 공연 때는 관객을 이끌어야 했고, 공연 밖에서는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재 이아람의 장점과 한계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획자로서 생각해야 할 것들, 감독으로서 챙겨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알게 됐고, 십시일반의 기쁨도 강하게 느꼈다. 음향장비를 쓰지 않고 자연음향으로 관객들과 경복궁 곳곳을 산책했던 봄날 밤의 추억은 앞으로도 잊기 힘들 것이다.

여우락 페스티벌 공연 모습

경복궁 음악회 <대금이 이끌다, 소리가 이끌다> 공연 모습

실험정신의 원천
요즘 자기소개를 할 때 미는 말이다. 나를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은 인생을 처음 사는 것 같은 '호기심'과 인생을 영원히 살 것 같은 '오기'다. 나는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머리부터 들이밀고 보는 성격이다. 무조건적인 도전을 통해 결승점에 도달하는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짜릿한 맛이 난다. 잘 모르는 분야를 맞닥뜨렸을 때, 상상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목격할 때, 동료들과 딱 맞는 소리가 나며 최상의 호흡을 맞추게 될 때 등. 그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원래 '아는 맛'이 참기 힘든 법이니까. 둘째로 '오기'는 열정과 노력을 전제로 하는 삶의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에 대해 갈구하는 것,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 것, 완전해질 때까지 더 나아가는 것까지 이 성장의 과정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예컨대 성공한 다이어터의 요요 방지를 위한 처절한 노력 같은 거랄까.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거라던데, 나의 오기도 평생 지속되길 바란다.
내가 발견한 전통의 가능성
전통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정신을 토대로 지켜야 하는 방향. 다른 하나는 변태를 거쳐 발전시켜야 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이 길은 결코 두 갈래 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던 시대에는 규정이라는 것이 많지 않았다. 연희와 예술은 개성을 한껏 드러내는 장르였으며, 누구나 저마다의 풍류를 자유로운 모양새로 즐길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로 소실되고 건너뛴 아픈 역사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것을 지키고자 연대와 보존의 틀로 묶어 놓다 보니 고착된 부분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통은 어느 한가지 모습으로 규정지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존재다. 이제 현대인들은 유튜브 속에서 국악공연을 쉽게 볼 수도 있고, 해외에서 우리 전통문화와 예술을 발견하기도 한다. 전통의 흐름을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로 흘려보내는 역할이 전통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전통의 길이 되는 것이다. 민족의 삶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전통 장르를 현재의 삶과 떼어내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구전되고 회자될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 스스로 전통을 규정화, 범주화, 박제화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전통은 살아 움직여 어디에서든 숨 쉴 것이다.

인터뷰 중인 이아람

Chapter 03 개인 취향

추천할 만한
책은 고전소설을 좋아한다. 작년에 공연으로 올릴 만큼 좋아하는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앞으로 무대화하고 싶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추천한다. 최근에는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틈틈이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진 않다. 장소는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를 좋아한다. 서울과 멀지 않아서 머리가 복잡하거나 조용한 장소가 필요할 때 찾는다. 자정쯤 가면 아무도 없어서 정말 고요하다. 단, 조금 무서울 수도 있다. 음식은 달걀을 무척 좋아하는데, 일본식 전골요리인 스키야키는 내게 최고의 음식 중 하나다. 두꺼운 무쇠 팬에 가다랑어 육수를 끓인 뒤 살짝 익힌 고기와 채소를 날달걀에 푹 적셔 먹을 때의 만족감이란. 만들기도 어렵지 않으니 한 번씩 도전해 보시길.
나의 성격
내 인생에는 3대 목표가 있다. 좋은 음악 하기, 맛있는 음식 먹기, 그리고 사람들을 웃기기. 그중 최대의 숙명적 과제는 단연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다.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크고 작은 고난과 위기의 순간도 따뜻한 위트로 순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지하되 고집스럽지 않고, 유연하지만 얄팍하지 않은 성격이고 싶다. 내 성격과 능력에 약점이 많지만, 감사하게도 내 곁에 그런 내 약점을 보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은사님들이 그렇고, 동료, 후배들이 그렇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그 친구도 내게 그런 사람이다. 누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장점과 약점이 만나 퍼즐처럼 끼워지는 것 같다. 내 장점이 누군가의 약점을 보완할 때 쓸모를 느끼고, 상대가 내 약점을 채워줄 때 감사를 느낀다.
최근 주목하는 프로젝트
소리꾼 장명서 씨, 가야금 앙상블 헤이스트링, 입과손 스튜디오, 현대무용그룹 아트프로젝트보라, 국립창극단의 신작들, 소리꾼 김보라와 베이시스트 이원술이 함께 만든 신노이 프로젝트 등. 잘 되길 바라는 프로젝트들이 여기에 다 나열하지 못할 만큼 많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많은 공연을 보지 못해 안타까울 정도다. 요즘 말로 '갑툭튀'라고 하는데, 이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들이 아님을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지 알기에 더욱 응원을 보낸다.
취미생활
한때는 농구와 수영이 취미였고, 음악 컬렉션이 취미일 때도 있었고, 책과 영화도 많이 봤다. 최근에는 다양한 결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요즘 가장 즐기는 취미라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때로는 '완벽한 타인'으로, 때로는 '온유한 지인'으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유추해본다. 시선, 생각, 취향, 성격까지... 저마다 다른 삶의 재료를 갖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영감을 얻는 방법
이건 비밀인데, 나는 몸치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동경이 생긴다. 안무가 혹은 무용수의 움직임은 내게 많은 영감을 선사한다. 미술작품에서도 영감을 얻을 때가 있다. 무용이나 미술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건 컨템포러리 쪽이다. 컨템포러리 장르가 주는 모호함이 좋다. 직관적이지 않은 작품에서는 만든 이가 의도하지 않은 감성이나 해석을 느낄 수 있다. 보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답 없는 질문', '타겟 없는 화살'같이 느껴진다.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하다. 정답과 타겟을 정하는 순간, 장과 폭이 좁아진다.
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
가장 좋았던 순간은 해를 거듭하 며 자동 업데이트되고 있다. 점점 더 나은 순간이 온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감사하고 충만한 시간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동료들과 같이 음악을 만들면서 '내가 이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을 때 가장 행복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칠 때도 그런 순간들이 매일을 살아가게 한다. 물론 여전히 삶의 한 면은 잔인하고 팍팍하다. 하지만 인생은 단면도 양면도 아닌 겹겹으로 이루어진 다면체이기 때문에, 한쪽 면만 보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여러 일과 포지션, 사람과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느끼게 된 고마운 것이다.
나에게 전통이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 같은 존재다. 길을 잃더라도 그 '집'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할 지 잊지 않게 한다. 밖에서 고단해진 몸을 누이게 하는 익숙한 공간이며, 다시 나아갈 힘을 충전해주는 곳이다. 내가 커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집'. 모두가 내 집 마련을 꿈꾼다고 하는데, 같은 맥락으로 나도 나만의 '집'을 꿈꾼다. 그 안에 동지들을 초대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밥을 지어 먹으며 살고 싶은, 웃음꽃도 피우고 이야기꽃도 피울 그런 '집'. 나의 '집'에는 마당도 있고 방도 있지만, 울타리는 없었으면 좋겠다.

Chapter 04 이상과 현실

나의 현재와 만족도
93/100. 100점 만점의 자체 평가에서 93점을 매겼다. 3점은 여전히 여러 가지로 실력이 부족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더 채워나갈 부분이 남았기 때문에 감했고, 다른 3점은 주위 사람들에 많이 받았음에도 아직 갚지 못한 마음의 빚 때문에 감했다. 나머지 1점은 평생 노력해야 하는 나를 위해 남겨 놓은 에누리다. 어쩌면 계속 99/100에 머물지도 모르지만.

힘들었던 일

뭐든 처음 시작할 때 재미도 있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창작집단 숨비와 함께 한 '물의 경계'라는 작품은 설치미술과 전통 퍼포먼스가 만난 작품이었는데, 내가 대금을 불다가 물에 들어가는 대목이 있었다. 그 작품을 위해 제주도에 가서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자격증도 땄다. 오랜 시간 숨을 마시고 부는 대금만 불던 내가 완전히 숨을 멈추고 나를 비우는 일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게 해줬다. 처음 음악감독을 맡았을 때도 기획과 믹싱을 혼자 알아가며 힘들었고, 특히 올해 여우락페스티벌의 감독을 하면서는 나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봤다. 감독의 자리에 오르려면 모름지기 전반적인 인지와 이해의 폭이 깊고 넓어야 한다. 그 전반에는 작품, 아티스트, 관객, 무대, 기획, 매니지먼트까지 포함한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감독을 맡고 나니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연주자-기획자-감독 사이를 오간다는 것이 욕심과 의무를 조절하는 일인데 그게 쉽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정신 상태와 건강 상태를 조절하는 것도 어려운데, 다수의 욕구와 의견과 충고와 관계를 수용하고 융합하는 부분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모든 일, 모든 관계에서 마찬가지다. 무대와 객석, 아티스트와 관객, 사람과 사이의 간극을 잇고 간격을 메우는 일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보다 그 힘든 시간들이 빨리 지나간다는 점'이다.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경험이라는 귀중한 산물을 놓치기 쉽다.

위부터 숨비 '물의 경계' 사진 / 숨비 '물의 경계' 티저 영상

내가 꿈꾸는 순간

이아람씨의 공연모습

어렸을 때 보고 들은 음악가들은 내 꿈이고, 환상이었다. 그들과 협업하고 한 무대에 선다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가슴 떨린다. 인도 타악기인 따블라 명인 자키르 후세인, 반수리 명인 하리프라사드 차우라시아, 방글라데시 출신의 영국 안무가 아크람 칸... 내가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이들이다. 직접 만나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내 첫 번째 꿈이다. 두번째 꿈은 가까운 미래에 혼자만의 무대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고 만들어지는, 오로지 관객과 나만 있는 독무대를 만들어 보고 싶다. 초창기에는 다른 의미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주인공 병' 같은 걸 앓는다.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나만 돋보이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이 드는 뭣 모를 시절에 그 병이 찾아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모든 역할을 감내하며 자전적 시점에서 나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담는 무대를 올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금 한 자루 들고 전 세계를 유랑하며 한량으로 사는 게 최종 목표다. '한량'을 사전에 검색하면 영어로 'playboy'라고 나온다. 연주하는 남자라니, 이 또한 나에게 얼마나 절묘하게 적절한가.

이아람씨의 공연모습

미래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만약, 적성에 맞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건 벌써 재미없는 것이다. 대체로 적성은 해보면 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분야를 도전해도 될지를 고민한다면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단, 전통을 '집'으로 삼으라고 하고 싶다. 안방에만 앉아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도전하기 전에 내 안에 뿌리가 잘 박혔는지 확인해봤으면 좋겠다. 완전히 전통이라는 뿌리가 내 몸에 박혀있다면, 어떤 것이든 도전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선생님 눈치가 보인다면 관습을 원망하기보다는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전통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면 어떤 도전이든 박수받고 환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대중성과 정통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고 싶다. 창작하는 입장에서 '대중에게 먹히는 음악' 즉 타겟팅을 먼저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만약, 설 무대가 없다고 생각되거나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소극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나도 연주자로 머물렀을 때 '누가 와서 기획해주면 대금 끝내주게 불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왜 설 무대가 이렇게 적지'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무대가 없으면 만들면 되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작게라도 공연을 선보여야 한다. 내 무대를 기획해줄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기획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관계를 맺으라고 하고 싶다. 결국 전통계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관계가 우선이다. 연줄을 중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애티튜드를 갖춘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스승이나 친우나 선후배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 함께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결국 무대도, 작품도, 인생도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거니까.
앞으로의 계획
현재 블랙스트링 2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2019년 1월에 녹음하여 상반기에 발매될 예정이다. 블랙스트링과 음악그룹 나무의 2019년도 해외 일정이 잡히고 있는 중이라 내년에는 해외투어를 많이 나가게 될 것 같다. 지난 11월 29일에 국립국악원 목요풍류에서 연주했던 서용석류 대금 산조 전바탕을 녹음하여 개인앨범으로 발매하려고 계획 중이다. 2019년도에도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며 경계를 점차 확장하고, 동시에 나의 '집'인 전통음악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학습을 꾸준히 이어나갈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2019년 5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인생 2막을 어떻게 시작할지 반려자와 함께 즐겁게 의논하며 준비 중이다.

나의 키워드

  • 무지개
  • 달걀
  • 노란 조명
  • 공원과 미술관
  • 설거지
  • 멍 때리기
  • 고양이
  • 무경계
  • 비오는 오후
  • 드라이브
  • 수다
  • 자전거
  • 느린 산책
  • 낮잠
  • 탈장르
  • 막국수
  • 무용
  • 커피
  • 따라하기
  • 포옹
  • 성음
  • 박학다식
  • 모두의 웃음
  •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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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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