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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명약

문 밖의 사람들, 그 첫 포문을 연 <안은미의 북한춤>

글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우리는 하나의 춤을 추지 않았을까?"
이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된 공연이 지난 6월 1일부터 3일 간 열렸다.
북한이 세계적 화두가 될 것을 예견하기라도 했다는 듯
준비된 무대, 준비된 춤사위는 신선한 충격으로 모두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패러다임의 경계에서
예술감독 안은미

예술의 역사에서 패러다임을 바꾼 예술가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경계를 파괴함으로써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예술이 숙명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예술가의 모험적인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적다. 한국 현대무용 분야에서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으로는 최승희(1911~1969)를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 현대무용의 시원적 존재인 최승희는 일본 현대무용의 개척자 이시이 바쿠에게 발레를 비롯해 정통 서양 무용의 기본을 익혔다. 이후 전통무용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자신만의 춤으로 아시아, 유럽, 미국, 남미에서 투어공연을 가진 월드스타가 됐다. 최승희 다음으로는 단연 안은미다. 그는 관습의 틀을 깨는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춤으로 한국 안무가 가운데 일찌감치 유럽 공연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 2014년 파리여름축제에 초청된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가 프랑스 주요 언론의 호평을 받은 이후 그에겐 전 세계 공연계의 초청이 잇따르고 있다.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의 경우 2015년부터 유럽 주요 극장과 페스티벌 무대에 계속 오르고 있다. 그리고 올해 5월 그는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의 주요극장인 '테아트르 드 라빌'의 상주예술가로 선정되는 등 한국 현대무용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게다가 역사 속에 남은 최승희와 달리 그는 현재진행형이다.

6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안은미의 북한춤>은 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춤세계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자리였다. 지금까지 국내 무용계에서 어떤 안무가가 금기로 여겨진 북한춤으로 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던가. 그동안 탈북 무용수들의 행사성 공연이 있었지만 주류 무용계에서는 '보살춤', '초립동춤' 등 최승희의 춤을 재연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전통 공연예술 확장 실험 시리즈 '문밖의 사람들-門外漢'의 첫 작품이었던 <안은미의 북한춤>은 한반도의 해빙 무드와 맞물려 큰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안은미가 기막힌 타이밍에 작품을 내놓았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지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안은미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북한춤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은미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가 최악이던 지난해 이번 작품을 올리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한 후 국가보안법 저촉 여부 등 변호사에게 각종 법률 자문까지 받았다. 이번 작품의 기막힌 타이밍은 안은미가 누구보다 먼저 북한춤을 안무의 소재로 고민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포용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금기 없는 그녀
금기 없는 그녀
6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안은미의 북한춤>은 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춤세계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자리였다. 지금까지 국내 무용계에서 어떤 안무가가 금기로 여겨진 북한춤으로 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던가. 그동안 탈북 무용수들의 행사성 공연이 있었지만 주류 무용계에서는 '보살춤', '초립동춤' 등 최승희의 춤을 재연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전통 공연예술 확장 실험 시리즈 '문밖의 사람들-門外漢'의 첫 작품이었던 <안은미의 북한춤>은 한반도의 해빙 무드와 맞물려 큰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안은미가 기막힌 타이밍에 작품을 내놓았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지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안은미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북한춤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은미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가 최악이던 지난해 이번 작품을 올리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한 후 국가보안법 저촉 여부 등 변호사에게 각종 법률 자문까지 받았다. 이번 작품의 기막힌 타이밍은 안은미가 누구보다 먼저 북한춤을 안무의 소재로 고민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포용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예술감독 안은미 인터뷰
안은미   라는 新 장르
최승희의 ‘보살춤’을 재해석한 안은미
<안은미의 북한춤> 공연은 25현 가야금의 청아한 선율로 시작된다. 1960~1970년대 일찌감치 악기 개량에 나선 북한에선 전통적인 12현 가야금은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태어나 평양음악무용대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공부한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의 가야금 연주는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극대화한다. 이때 무대 뒤편에 최승희의 그 유명한 '보살춤'을 추는 안은미가 등장한다. 최승희는 남북한 모두에 영향을 끼쳤지만 북한에서는 특히 절대적이었다. 북한춤의 현대화, 집단화, 종합화 경향이 최승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최승희가 쓴 무보집 <조선민족무용기본>(1958)에는 입춤을 비롯해 부채춤, 탈춤, 수건춤, 소고춤, 칼춤 등 다양한 춤의 춤사위와 선율 등이 정리돼 있는데, 북한춤 표현기법의 바탕이 됐다. 나중에 최승희는 숙청됐어도 그가 체계화한 동작과 기법은 오히려 더욱 세밀하게 정리됐다. 따라서 최승희를 보여주는 것부터 <안은미의 북한춤>이 본격 전개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안은미가 최승희보다 훨씬 큰 관을 쓰고 하이힐을 신은 모습으로 나온 데서 알 수 있듯 원작의 재연이 아니라 안은미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무용수들 역시 그동안 북한춤을 접한 적이 없던 안은미컴퍼니의 젊은 무용수들이다. 작품 제목부터 <안은미의 북한춤>인 것은 직관과 통찰을 통해 북한춤에 접근하겠다는 작품 성격을 확실히 드러낸다.
밖에서 들여다 본 북.한.춤
안은미는 작품을 위해 유튜브에 있는 다양한 북한춤 동영상과 최승희의 <조선민족무용기본> 등을 통해 북한춤 기본 동작들을 익혔다. 또 북한에서 정식 춤 교육을 받은 재일 무용가 성애순에게도 직접 배웠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최승희라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한국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화한 북한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안은미의 보살춤' 이후 무대 뒤편 스크린에 1945라는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더니 2018에서 멈춘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남북한으로 나뉜 뒤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류가 없었던 만큼 북한춤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안은미의 시선으로 해석된 첫 번째 북한춤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에 맞춰 황금색 제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얼굴은 옆면을 향해 90도로 꺾고 무릎을 굽히지 않은 채 다리를 45도 각도로 쭉 뻗은 채 걷는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북한 군대의 열병식 또는 북한 특유의 대규모 종합예술인 혁명가극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주제 면에서 혁명정신과 주체사상을 담도록 요구받는 북한춤의 특징을 무겁지 않게 보여주고 있다. 이어 흰색과 검은색으로 된 개량한복 차림의 무용수들이 음악 없이 다양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장면이 꽤 길게 이어진다. 이번 작품에서 북한 노래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보천보전자악단의 지휘자이며 작곡가인 리종오(1943~2016)가 작사 및 작곡한 '반갑습니다'와 '휘파람' 두 곡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작곡가 장영규의 창작음악이 주로 쓰였는데,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북한 춤사위의 특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부러 음악을 뺀 것이다. 발레와 신무용을 결합한 최승희의 <조선민족무용기본>에서 발전한 북한춤은 표현기법 면에서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되 움직임이 빠르다. 그리고 동작이 크지만 기계적이고 절도가 있으며 직선적 형태가 많다. 예를 들어 팔의 움직임은 손목을 꺾거나 돌리는 형태가 많고, 발의 움직임은 발끝으로 섰다가 뒤꿈치로 걷는가 하면 발끝으로 자진걸음으로 걷는 형태가 많다. 집단무가 많기 때문에 무용수들의 직선적 배열과 이동이 일사불란하다. 그리고 무용수들의 표정은 인공적이라고 할 만큼 웃는 얼굴이다. 최승희의 무당춤 독무를 바탕으로 만수대예술단의 김해춘이 군무로 재창작한 쟁강춤도 눈길을 끈다. '쟁강쟁강' 소리나는 방울을 양 손목에 차고 흔들며 추는 춤으로 방울을 한 손에 들고 흔드는 한국의 전통 무당춤과 뚜렷하게 비교된다. 칼춤, 부채춤 등 한국의 전통춤과 다르게 발전한 북한춤도 확인할 수 있는데, 봉건적이고 복고주의적인 춤을 비판한 김일성 교시에 따라 궁중무용과 종교의식무용이 사라진 데 따른 것이다. 또한 민속춤을 기반으로 남녀가 광장에서 함께 추는 대중무용도 흥미롭다. 사실 북한은 한국보다 춤을 생활화해서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춤을 즐기는 편이다. 한국 전통춤이 대중과의 거리감이 큰 것과 비교할 때 북한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춤을 소재로 했지만 이번 작품에도 안은미 특유의 키치적 감성이 묻어난다. 반짝이는 비닐 소재 및 형광색 의상은 물론이고 '휘파람' 노래에 맞춘 안은미의 립싱크와 춤은 유머러스하다.
<안은미의 북한춤> 공연 모습

이번 <안은미의 북한춤>은 북한춤에 대해 안은미식 해석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내년 2월 테아트르 드 라빌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보였을 때 현지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사실 이번 작품은 우리의 몸과 움직임을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등 3부작이나 신체의 장애를 넘어선 해방과 자유의 몸짓을 보여준 <안심땐스>, <대심땐스>와 비교해 깊이 있는 사유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현재 한국 여건상 북한춤에 대해 제한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밖에 없었던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안은미는 앞으로 탈북자들과의 만남 또는 남북한 교류 활성화에 따른 북한 무용계와의 협업 기회가 오면 다시 한번 북한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한다. <안은미의 북한춤>의 새로운 시리즈가 기대된다.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문화부, 스포츠부, 사회부, 국제부 등 여러 부서를 거치며 기자뿐만 아니라 공연칼럼니스트로서 공연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밌게, 재밌는 것을 진지하게, 진지한 것을 유쾌하게, 그리고 유쾌한 것을 어디까지나 유쾌하게”라는 일본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격언에 따라 대중과 공연예술계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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