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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위한 詩창극 <시> 연출가 박지혜 인터뷰

글 김일송(이안재 대표, 공연 칼럼니스트)
천상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말했다. "시가 내게로 왔다." 그에게 '시'는 삶의 한가운데 실존하며 멈추지 않음으로 끝없이 새로운 존재였다. 박지혜에게 '시'는 어떤 존재일까.

*본 기사는 창극 <시>의 연출가 박지혜의 인터뷰를 네루다의 시와 글에 대입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괄호 안에 저자는 밝히지 않고 제목만 밝힌 인용문들은 모두 네루다의 시에서 가져 왔습니다. 시의 경우 편의상 행과 연의 구분을 지웠습니다. 전문의 일부만 차용하였으며, 기사의 맥락 상 과거와 현재의 시점(時點), 1인칭, 3인칭의 시점(視點)을 변경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울러 원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부 단어를 바꾸어 재편집하기도 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시>. 1월에, 땅 아래 묻혀 있던 그 꽃이, 그 은신처로부터 고지대 황무지로 솟아오른다. 남산자락 땅 밑에서 어떻게 준비를 했을까? 먼지, 바위, 그리고 재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거기서. 그건 어떻게 싹텄을까, 열심히, 맑게, 준비되어, 그 우아함을 세상으로 내밀게 될까?('알스트로메리아')

그렇게 시가 박지혜에게 왔다고 한다. 나는 모른다. 그게 어디서 그에게 갔는지.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그에게 갔는지 나는 모른다. 목소리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그를 부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밤의 가지에서.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을 수도. 아마 그의 입은 이름을 부를 줄 몰랐고, 그의 눈은 멀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무언가 그의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막연하게 첫 단어를 썼겠지. 형체도 없이, 어렴풋한.('시가 내게로 왔다')

배우 양조아 ©국립극장

네루다의 시면 충분했다. 창극 <시>를 위해서는 네루다의 시로 충분했다. 네루다의 영혼 위에서 잠들어 있던 것이, 그의 입에서 나와 하늘로 솟아올랐다. 네루다의 시들은 오래된 길처럼 사물을 박지혜에게 모아주었다. 네루다의 시는 메아리와 향수 어린 목소리로 붐볐다. 네루다의 영혼 속에서 잠자던 새들이 달아나 창극 <시>의 무대 위로 이주했다.('네 가슴이면 충분하다')

무대는 파티가 끝난 파티장. 네루다는 파티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 바 있다. "식사, 디너 재킷, 드레스 코트, 모닝코트, 관복, 댄스, 칵테일 파티는 언제나 지옥이라네. 집이 도피처지만, 약탈자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어, 우리는 포위공격을 박차고 나가 보온병과 코냑과 책을 들고 산이나 해안으로 달아나지, 모래 위에 누워 검은 섬 수마트라와 수중 화산 크라카토아를 바라본다네, 우린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네."(애덤 펜스타인, <빠블로 네루다>에서 재인용)

무대 위 인물은 네 명. 배우(양조아, 양종욱)와 소리꾼(유태평양, 장서윤)이다. 그들이 어떤 인물일지 알 수는 없다. 디너 재킷을 입은 신사일지, 드레스 코트를 입은 숙녀일지. 모닝코트를 입은 여주인일지, 관복을 입은 공무원일지. 혹 다른 인물일 수도 있겠다. 비극적인 사랑에 붙잡혀 인생을 살았고, 어린 잎 모양의 석영(石英)조각을 소중히 보살폈으며 눈으로 삶을 고정시킨('시인') 시인일 수도, 한때 그가 사랑했던 맑고 맑아 근사한 여름날 자두나무 사이에서 한 번 사랑했던 여자, 속수무책의 금색에 스며드는 산(酸)과도 같은 눈을 갖고 있었던 여자('돌아온 방랑자')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도착하자 또 즉시 새로 생긴 다감함으로 작별을 고하며 마치 빵이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달아나듯이, 그리하여 모든 언어들을 뒤에 남기며 오래된 문처럼 작별을 되풀이('작별들')하는 방랑자일수도. 집도 땅도 없었고, 알파벳도 이불도 구운 고기도 없었으며, 그리하여 여기저기로 노상 옮겨 다녔고, 생활의 결핍으로 죽어('죽은 가난한 사람에게')간 망자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 모두일 수도.

위부터 배우 양종욱, 유태평 ©국립극장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 그는 말했다. 확실한 건 무대 위 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세계가 있으며, 그 세계에서 사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시간, 각자의 공간 안에 살고 있는 개인들이다. 네 명의 개인은 홀로 혹은 함께, 읊조림으로 외침으로, 독백으로 방백으로 대화로, 그리고 입으로 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네루다의 시를 암송하게 된다.

그 시들이란, 앞선 시에서 느껴지듯 이별의 정서 충만한 시일 수도 있겠다. '밤하늘은 하늘에서 돌며 노래하는데, 나는 이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라고 노래하며 '키스하고 떠나버리는 뱃사람의 사랑을 사랑'('이별')한다던 네루다처럼, 창극 <시>의 시들이 작별의 시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배우들은 박지혜가 골라온 시에서 소멸의 기운을 느꼈다고 했다.

배우 장서윤 ©국립극장

하지만 박지혜는 다르게 말한다. 시적으로 옮겨본다. "지금 오늘, 2019년 12월 14일 오후 2시 5분 전의 느낌으로 시는 생명력이다. 생명력.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단어 아닌가. 살고자 하는 힘.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는 본능적으로 생겨나는 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세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힘. 그 힘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얼마나 충만하고 신비로운 힘인가."

박지혜는 네루다의 시에서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고 했다. 그에게 네루다의 시는 '살-사과, 뜨거운 달, 해초의 짙은 냄새, 가장한 진흙이며 빛'(100편의 사랑 소네트 12)과 같은 생명의 노래 그 자체였을 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 네루다의 시어들은 피 속에서 태어났고, 어두운 몸속에서 자랐으며, 날개 치면서, 입술과 입을 통해 비상했다. 말은 의미로 채워졌다. 언제나 아이와 함께, 그런 생명으로 채워져 있었다. 모든 게 탄생이고 소리였다. 긍정, 명확성, 힘, 동사는 모든 힘을 얻어 그 우아함의 강렬한 긴장 속에서 실존을 본질과 혼합했다.('말')

어쩌면 그 모두일 수도 있겠다. 소멸과 탄생. 탄생과 소멸.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순환 아니겠나. 마치 두 개의 수로 사이에서 그러듯, 눈을 감고 비틀거릴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은 없을 것이다. 한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지맥 속에서 그를 들어 올릴 테고, 다른 쪽은 그가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래할 테니까('충만한 힘') 창극 <시>가 그런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는 자리가 아닐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이제 여기 바로 창극 <시>를 소개하는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독자를, 아니 관객을 향한 마지막 말은 박지혜의 것으로 갈무리하는 게 낫겠다. “시란 아주 사적인, 내밀한 데에서 나오는 고백의 말들이다.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느낌들을 공유하는 게 시다. 창극 <시>는 네루다의 은밀한 고백을 배우와 소리꾼이 자신만의 언어로, 소리로, 신체로 풀어낸 무대 위의 시다. 관객 또한 저마다 사적인 시간을 갖게 되기 바라고, 저마다 사적인 느낌을 품고 돌아가길 바란다. 그야말로 혼자 시집을 펼쳐 읽듯이.”

추천명약
공연안내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3 - 시(詩)
  • 날짜2019. 1. 18 금 ~ 1. 26 토평일 20:00, 주말 15:00 (월 공연없음)
  • 장소국립극장 하늘극장
  • 관람8세 이상 관람가 / R석 4만 원, S석 3만 원
  • 문의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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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송(이안재 대표 소사)
  • 2003년 기자로 시작해, 2016년까지 공연 문화 월간지 <씬플레이빌>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이안재의 대표소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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