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통처방전

전통공연예술계,2019년 전망과 과제

글 임수정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plot의 핵심이 발견이라고 했다. 모든 게 순식간에 바뀌고 무수히 쏟아지는 몰개성의 시대 속에 전통공연계는 노래 한 줄, 춤 한 자락에 저마다 깃든 표정, 감정, 이야기들을 찾기 위해 애써왔다. 2019년, 시대를 살아가는 전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여러 시각으로 더듬어 본다.

전통공연예술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부적으로는 한국 공연계를 뒤흔든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부터 소극장들의 부지런한 활약까지 여러 희비와 명암이 엇갈린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같은 이슈는 내부에만 고여있는 모양새다. 작년 남북 정상회담 및 미·북 정상회담 같은 굵직한 정치적 이벤트 속에서 북한에 대한 문화적 관심과 접근이 폭증했지만, 전통예술계의 '활약'이 아닌 '소외'가 두드러졌다. 구성원들의 공감대 부족, 관련 기관·극장의 모호한 역할 분담, 정부의 일관성 부족한 정책 방향 등이 혼재된 가운데 조타수 없는 항해를 이어나가고 있다. 기해년(己亥年) 새해에는 순항할 수 있을까. 새해 공연 제작 및 지원 방향을 듣고자 주재근 국립국악원 과장(이하 주)과 김준원 정동극장 대리(이하 원), 김대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팀장(이하 진)을 연합뉴스 임수정 기자(이하 임)가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예술공간에서 만났다.

2018년, 한해를 돌아보며

#블랙리스트와 미투 #이슈 속 위축

중구난방의 한 해였던 것 같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소용돌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미투 바람이 강하게 불어닥치며 현장 곳곳이 무너졌다. 새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에 문화예술계 이슈가 제대로 담기지 못한 데다가 화두로 떠오른 북한과의 교류·협력 문제에서도 전통예술계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동감한다. 여러 이슈로 전통공연예술계가 잔뜩 위축된 가운데 이렇다 할만한 신성장 동력은 올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공연·작품보다는 정치·사회 이슈가 더 많이 부각된 한 해였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자문 역할을 한 작품이 공연 이틀 전에 취소가 됐던 기억이 있다. 우리뿐이겠는가. 외부와 협력할 때 아무래도 그런 부분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전반적으로 활력이 줄었다.

정동극장은 프로덕션을 진행하면서 예술가 등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교육을 도입했다.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복잡한 이슈 속에서도 민간 공연장들의 시도 자체는 눈여겨볼 만했다. 서촌공간 서로의 '깊은 사랑' 시리즈는 전통 예술가들의 삶과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참신했고, 정효아트센터는 국악 태교 음악회와 여창가곡 전곡완창 시리즈를 관객 수와 상관없이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정동극장도 나름의 성과와 변화의 움직임을 발견한 한 해를 보냈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 판소리극 '적벽'과 창작뮤지컬 '판'을 통해 극장 인지도가 올라갔다.

2019년 시도해야 할 과제

#수요 창출 #꾸준한 시도 #전통예술계 스타의 필요성

올해 전망과 과제로 이야기를 이어보자. 정동극장이 이야기한 '적벽'과 '판' 뿐 아니라 국립국악원이 영화계와 합작해 선보인 공연 '꼭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전통음악을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한 '문밖의 사람들 시리즈' 등도 장르와 세대를 넘어선 과감한 도전으로 대중을 관심을 끌었다.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관별로 수요 창출을 위한 노력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 같다.

  • '적벽' ©정동극장
  • '꼭두' ©국립국악원
  • 문밖의 사람들 시리즈 '안은미의 북한춤'

올해 재단은 수요층을 '세그먼트'(세분화)하는 것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작년 수요층 확대를 위해 이것저것을 많이 시도했으나 전략적이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엔 윤이상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으니 윤이상 음악과 그에 영감을 준 전통음악을 교차시킨 연주회를 기획했었다. 전통 쪽보다 클래식계에 큰 방향을 일으켰는데 올해엔 클래식 팬과 같이 공연별 특정 타깃을 설정해 타장르 관객을 전통 쪽 수요로 옮겨볼 계획이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올해 정동극장은 '적벽'과 '판'으로 전례 없는 회전문 관객(같은 공연을 여러 차례 반복 관람)을 경험했다. '판' 같은 경우는 뮤지컬 문법을 차용하다보니 아무래도 대중들에게 더 친숙했던 것 같고, 그 결과 연극·뮤지컬 관객이 많이 유입됐다. '적벽' 공연을 본 관객들이 적벽가 완창 공연을 보러 가는 선순환 구조도 나타났다. 다만 이후 전통적 요소가 조금 더 강조된 '판소리 오셀로'나 탈춤극 '오셀로와 이아고' 공연에서는 여전히 관객들과 줄일 수 없는 간극을 확인했다. 극을 규정하는 판소리나 탈춤극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선입견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깨는 무엇인가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 '윤이상, 그 뿌리를 만나다'
  • '판' ©정동극장
  • '태평서곡'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의 역할은 국립극장이나 정동극장과는 다르다. 국립국악원은 대중의 취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전통이 제대로 유지되는 데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재현한 '태평서곡' 공연은 조선 왕실의 무용과 음악을 총망라하는 왕실 문화예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데, 2001년 초연 이후 마니아층이 형성됐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는 공연이다. 이런 게 국립국악원만 할 수 있는 공연이다. 동시대 대중과의 소통은 민간이 훨씬 빠르고 감각적이기 때문에 국립국악원이 대중 취향을 과도하게 좇는다거나 무리한 실험적 시도를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본다.

배우 캐스팅이나 스타 출연 역시 관객들의 티켓 구매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공연계에서 흔히 말하는 흥행 조건을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국립창극단 공연이 최근 잘 된 데에는 젊은 소리꾼 김준수와 유태평양 등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한다.

풀어야 할 시대적 숙제

#일자리 다양성·질 #주 52시간제 #적합한 대응 #시대 적응

공연계 전체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한 여가시간 확대에 발맞춰 공연 시간이나 형태 등을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예술의전당이나 LG아트센터 같은 공연장은 최근 공연 시작 시각을 오후 8시에서 30분가량 앞당기는 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반면, 기술직군이 중심이 된 충무아트센터 노동조합은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쟁의 행위를 이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공연예술계는 어떤 변화를 예상하는지 궁금하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내부적인 혼란이 예상된다. 무대 인력의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서 기관마다 자체 공연을 소화하는 것도 버거워질 수 있고 그 결과 외부 대관일수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 국악원의 경우 과거 대관하는 외부 단체에 음향이나 조명 인력 등을 지원했다. 그러나 근무 시간 감소로 이런 지원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스태프 비용은 고스란히 민간으로 전가될 수 있다.

저희도 과거와 달리 월요일 무대와 세트 셋업이 아예 사라졌다.

오전 무대감독과 리허설 시 무대감독, 공연할 때 무대감독이 달라지는 경우 등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결국 이는 무대의 질이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도기가 주는 혼란은 있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방향 자체는 옳다고 생각한다.

선진 공연 시스템으로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맞지만 그 과정이 너무 촉박하게 이뤄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문화예술계와의 협의도 너무 부족했다.

일자리 창출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저희는 일자리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 재단은 이를 위해 작년 노인요양시설에 전통예술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사업을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전통예술이 무대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만든다는 의미도 있지만 약 1만4천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노인요양시설에 전통예술 프로그램이 도입된다면 이를 진행할 강사 수요가 꽤 많이 창출될 것으로 본다

일자리 수도 중요하지만, 질을 높이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공연 1회당 출연료가 평균 20~3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리허설비, 교통비, 식대 등이 다 포함되는 구조다. 자생할 수 없는 출연료 체계를 현실화해야 한다.

사회적·시대적 역할

#남북교류사업 #다양성 #공유와 가치 #변수와 변화

남북 해빙 무드 속에서 문화예술계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국립 예술단체 및 기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교류 사업과 학술회의 등이 쏟아지고 있는데.

국립국악원은 3~4년 전부터 꾸준히 북한예술과 관련한 연주회와 학술회의 등을 개최해오고 있다. 아직 구체화한 건 아니지만 강원도 측에서 정선에 국악원을 유치하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데, 만일 정선에도 국악원이 생긴다면 정선아리랑이라는 남북 공동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그 분원을 남북 전통예술 교류의 축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남과 북이 보는 전통이란 개념 자체가 아예 달라서 그 부분부터 정리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산조나 종묘제례악 등 소재를 중심으로 전통을 규정한다면, 북한은 사람을 중심으로 전통 여부를 판단하더라. 특정 예술가가 하는 것은 창작적 요소가 많이 가미가 돼도 전통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 때문에 남북 간 축적된 자료를 서로 나누고 연구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물론 남북 이슈는 워낙 변화에 민감하다. 항상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교류 사업을 진행해보려 한다.

모든 생명은 뿌리에서 시작한다. 전통은 우리에겐 중요한 뿌리이자 맥이다. 전통은 굽이굽이 세월을 따라 흐르며 시대의 미학과 통증과 진실을 담아왔다. 우리 가락과 춤 사위는 사람과 시대를 잇고 하나 되게 만들던 존재다. 지금의 시대에서도 그 역할과 가치는 다르지 않다. 전통공연예술계가 경계 지어 있던 것들을 어떻게 허물고, 재단되고 갈라선 것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명민한 지혜로 갈래를 절충하고, 낯선 어울림을 아름답게 그려나감으로써 비약적으로 미래를 향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임수정(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 연합뉴스에서 문화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가 주목한 곳에는 사람이 살고 예술이 흐른다. ‘열린 귀와 너른 마음 그리고 냉정함’ 이 모든 것이 관객과 공연 현장을 향한다. 그렇기에 그의 이야기는 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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