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그들의 이력서

비움으로 삶에 자리를 내어주다문화기획자 권지민

기준, 가치, 관계와 상관없이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내 생각에 귀 기울이고 나만의 상상을 펼치는 사람

Chapter 01신상털기

  • 이름권지민
  • 생년월일1980. 10. 25
  • 별자리전갈자리
  • 특기/포지션일인다역
  • 소속제주스테이 비우다 대표
  • 직업문화 기획자

Chapter 02인생이력

  • 1999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
  • 2005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학사
    (기악전공, 무용원 이론 예술경영 부전공)
  • 2011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
    (응용언어문화학 문화콘텐츠 전공)
  • 2007국립국악원 장악과 기획홍보팀 근무
  • 2012~현 제주스테이 비우다 대표
나의 변곡점
나는 악기를 전공했지만, 무대 밖에 존재하는 것들에도 호기심을 느꼈다. 조명, 음향, 무대 연출과 장치, 모객과 공연 서비스까지 공연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이 나를 끌어당겼다. 내게 변곡점이라면, 남성을 선호하는 선생님의 내심(內心)을 알게 되었을 때인 것 같다.(실제로 한예종 전통원 1기 관악 파트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내가 몸담았던 2기부터 여성을 뽑은 이유가 남학생들이 모두 군대에 가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여성이라는 이유가 핸디캡이 된다는 걸 알고 난 후로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로 더 시선을 두게 되었고, 예술과 무대에 대한 공부는 정말 재밌었다. 이유야 어떻든 그 변곡점은 나를 즐거운 삶으로 이끌어 준 좋은 기회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것은 건강상의 이유였다. 완벽하게 모든 일을 하려다 보니 몸이 견뎌내질 못했다. 각막이 찢어지는 고통을 몇 차례 겪으니 더 이상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는 과정을 겪으며 몸 컨디션도 중요한 역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긴 주행을 위해서는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야 한다는 인생 지침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는 진리까지 깨달았다. 어쨌든 나로서는 삶의 굴곡에서 만난 변곡점들을 통해 하나씩은 얻은 셈이다. 인생의 순간마다 기회비용을 지불하며 잃고 얻는 과정을 반복한다. 인생은 외길이 아니라 수많은 기로의 연속이다. 하던 일을 멈출 때, 들고 있던 것을 내려 놓을 때, 다른 세상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멈추고, 내려놓는 법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때때로 내가 목표를 향해 빠른 걸음을 걷느라 놓친 것들이 없는지 돌아보려는 것이다.
전통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
늘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친구와 함께 국악고등학교를 다녀오시더니 국악기 전공을 권유하셨다. 피리를 전공하게 된 것은 아마도 국악고등학교 방문 당시 피리 전공의 교무주임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른 전공의 선생님을 만났다면 다른 악기를 전공했을지도 모르겠다. 철없던 중학생 시절, 전통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다기보다 어머니의 권유로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고 해야 맞다. 그렇게 취미가 아닌 전공을 하기 위해 피리를 시작했고 국악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무사히 합격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첫 전공시험이 유초신지곡 '상령산'이었는데 전교 꼴찌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첫 시험이 끝나고 충격을 받은 나는 졸업 때까지 삼 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아침 한 시간 반씩 연습했다. 이변이 없는 한 나는 6시에 등교하여 0교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유초신지곡' 한바탕을 연습했다. 어느 날 아침, 늘 하던 대로 연습을 하며 중령산쯤 불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 우는 소리와 피리 소리가 어우러져 얼마나 좋았던지 처음 느껴보는 감흥이었다. 바람과 새가 내는 자연의 소리 사이로 스미는 피리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렇게 전통음악이 좋아졌다.

졸업 연주 당시 모습

제주도로 날아간 이유

제주풍경

막연하지만, 완전히 새로 태어나고 싶었다. 먼저 내 삶의 패턴, 기후, 분위기까지 전혀 다른 곳이었으면 했고, 나와 아무런 연고가 없고, 이전의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으면 했다. 그때 떠오른 장소가 바로 '제주'였다. 마치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듯 전화번호도 바꾸고 마음가짐도 바꾸고 제주로 떠나왔다. 제주에 온 나는 새로운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제주는 무언가로 늘 가득 차고 넘치는 서울과 달랐다. 그대로의 자연이 펼쳐지는 도화지 같은 제주가 좋았다. 일이 있을 땐 물리적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긴 해도 자의적인 이항으로 비롯되는 제한은 거의 없었다. 내가 못 보던 풍경, 몰랐던 세상을 보자 새로운 경험과 생각이 시작되었다. 난 누구의 존재나 기준, 가치, 관계 등 그 어떠한 것과도 상관없이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온전한 나였다.

제주풍경

복합문화공간 '제주스테이 비우다'
복합문화공간 '제주스테이 비우다' ©박영재나에게 '제주스테이 비우다(이하 비우다)'는 무한히 자유롭게 생각하고 여과 없이 펼쳐놓는 방법을 모색하는 실험 프로젝트다. 수만 가지 생각과 욕구가 맞물려 '비우다'를 기획했다. 첫째로는 '공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서울에서 활동할 때는 공간을 갖거나 임대하는 일이 쉽지 않아 늘 공간에 대한 부족함을 느꼈다. 둘째, 내가 가진 생각을 문화예술로 자유롭게 펼치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기관이나 단체에서 공연기획 업무를 할 때는 기획자 개인의 성향보다는 기관이 나아가고자 하는 시각과 방향으로 맞추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기획자가 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드러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비우다'에서 만큼은 내 생각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했다. 셋째, 예술활동을 통한 경제적인 자립의 가능성도 타진해 보고, 더불어 기업 홍보활동에서의 예술의 활용방안을 실험하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었다. 기획자인 내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생각들을 문화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소통하고 홍보광고비의 지출 대신 문화예술활동에 투자하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꿈꿨다. 넷째, 전통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음악에 국한하지 않고 숙박의 공간 안에서 큰 의미의 문화로 재해석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즐기고 싶었다. 복합문화공간 '제주스테이 비우다' ©박영재
기획자에게 필요한 덕목
모든 기획물은 기획자의 주관, 즉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향해 풀어내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일방적인 소리만으로는 소통이라고 보기 힘들다. 또한, 단순히 보기 좋게, 바람직한 것을 나열하는 것은 기획이 아니다. 기획은 보다 많은 사람과 주파수를 맞추고 소통하는 일인 동시에 자신이 가진 색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반면에 자신이 가진 색을 지키는 힘이 필요하다. 타인의 가치에 뒤섞여 희석되거나 현실의 기준에 의해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 머릿속에 있던 기획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상상은 현실을 만나 생명력을 얻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바로 유연함이다. 다양한 문제에 부딪힐 때 나약하게 타협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연성 없는 딱딱한 사고는 기획의 실현을 방해한다. 수용과 타협을 혼동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비우다'는 이 단계와 개념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우선 기획자의 생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은 되도록 받지 않는다. 외부 지원 자금을 활용한 좋은 기획들도 많지만, 외부로부터 비롯되는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조직 또한 키우지 않았다. 조직이 커지면 색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의사결정 단계도 길어지기 마련이다. 작은 조직을 통해 본연의 뜻 그대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발견한 전통의 가능성
얼마 전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받고 돌아와 내내 자문했다. 많은 생각 끝에 '사람이 예술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술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며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 속에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이 있고, 사람들의 감정이 세월 속에 쌓여 역사가 되고, 그 전통이 뿌리가 되어 예술로 꽃피운다. 뿌리라는 것은 존재의 바탕이자, 미래의 기틀이다. 그러나 뿌리도 자라고 변한다. 미라처럼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대중과 소통할 수 없는 문화는 잊힐 일만 남은 존재다. 전통은 그 산물보다 핵심이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를 그대로 보존하고 답습하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핵심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대적 변용을 통해 전통이 지금의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문화 디렉터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을 향유할 소비계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향유계층의 개발, 전통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를 높일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통의 현대적 변용은 변질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전통이 통(通)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을 지닌 우리 문화기획자들의 몫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Chapter 03 개인 취향

추천할 만한
의식주 중에 고르라면 단연 '식(食)'이다. 특히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사람들이 먹는 현지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그 지역의 음식 속에는 문화, 역사,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이 제주에 오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닌다. 특히 흑돼지나 전복뚝배기를 많이 먹는데, '이게 진짜 제주의 토속음식일까'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주는 변방의 척박한 섬이었다. 지반이 송송 뚫린 현무암이기에 물이 고이지 않아 지슬(감자), 메밀, 콩 같은 밭작물이 고작이었다. 주식으로 먹을 곡식도 없는 척박한 땅 사정 때문에 고추 농사는 생각도 하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을 담가 먹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제주의 토속 음식에는 고춧가루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고춧가루 범벅인 생선조림 같은 것들은 제주의 전통음식이 아님이 분명하다. 전복뚝배기 또한 안을 잘 들여다보면 제주의 것이 아닌 것이 더 많다. 갯벌에서 나는 조개와 바다에서 양식하는 홍합이 잔뜩 든 그 찌개를 제주의 토속음식인 것처럼 먹는다는 것이 우스워진다. 이런 것들을 먹지 말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적어도 이런 음식들이 제주 토속음식이라고 생각하며 먹지는 말자는 이야기다. 진짜 제주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맛집을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김지순 명인의 '낭푼밥상' 진짜 제주 사람들이 옛날부터 먹던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의 제철 식재료를 전통조리법으로 차려낸다. 간장 베이스로 우럭과 콩을 넣어 조려내는 우럭 콩조림이나 깅이콩조림, 조밥에 바릇국, 접짝국, 콩국과 같은 전통적인 상차림으로 제주의 진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토종 간장 맛이 잘 우러난 '우럭콩조림'

임서형 쉐프의 '차롱' 제주 한림 출신의 임서형 쉐프가 운영하는 작은 정찬 식당이다. 제주의 제철 식재료와 향토음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 낸다. 차롱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납작한 바구니를 일컫는 제주말로 일종의 도시락이다. 어간장을 발라 구운 한치며, 제주보리로 만든 죽 등 제철 메뉴가 일품이다.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고등어보리죽'

두 곳 모두 제주의 식자재로 전통 제주음식을 기반으로 상을 차려내는 집이다. 다른 점이라면 낭푼밥상은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만든 향토음식에 가깝고, 차롱은 현대적인 퓨전 한식에 가깝다는 점이다. 전통도 좋고, 전통을 재해석한 모던한식도 좋다. 제주에는 좋은 명소와 맛집이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나오지 않는 곳들도 많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제주에서 이 지역만의 문화와 이야기가 숨어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좀 더 행복하고 맛있는 인생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성격
다소 집요하고 고집스럽고 까다로운 편이다.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완벽주의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보통은 주변 사람을 불편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인데, 가장 먼저 다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쉼과 조화를 이룰 줄 모르는 무리한 열정이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과유불급이라 하였던가. 요즘은 그것을 '워라벨'이라고 한다. 일과 쉼, 삶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일. 나는 크게 넘어지는 경험을 한 후에야 깨닫고 마음을 바꾸었다. 지금은 일부러 느슨해지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완벽하지 않은 상태를 만족하려고도 한다. 덜 까탈스러워지려고 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눈치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하하
최근에 주목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요즘은 사회적 기업 활동에 관심이 많다. 문화와 예술, 인문학에 대한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까지 폭넓게 관심을 두고 있다.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활동들은 늦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가시화된 것들보다 가시화되지 않는 것들에 더 주목하는 편이다. 더 나은 미래, 더불어 사는 것에 관심이 많다. 요즘은 무언가 손에 쥐려고 하면 할수록 손안에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느낌이 짙다. 그래서 단순히 얻고자 하는 것, 가지려고 하는 것보다는 함께 공유하고 가치를 나누는 것에 집중하는 중이다.

즐기는 취미

초록을 가꾸는 일을 좋아한다. 초록을 다루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지째 꺾은 절화로 꽃꽂이를 하기도 하고, 화분에 식물을 키우기도 한다. 나는 주로 땅에 심어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땅속으로 자유롭게 뿌리를 뻗고 햇볕으로부터, 토양으로부터, 빗물로부터 다양한 양분을 얻어 자라나는 꽃과 나무는 화분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씨에서부터 모종을 키우고, 모종을 땅에 옮겨 심고 사계를 지나 한 해, 두 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함께 생명력과 에너지를 얻는다. 땅에 심는 것을 좋아하는 다른 이유는 땅을 고르고 식물을 심는 과정에서 흙 내음, 풀 내음, 습기에 젖은 돌내음까지 온갖 자연의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분에 심는 것보다 땅에 심어 키운 것들이 더 건강하게 잘 자란다. 모종에서부터 키운 로즈메리가 지금은 내 키만큼 자라 나무가 되었고, 지난 초가을부터 키운 유칼립투스가 내 어깨와 견줄 만큼 키를 키웠다. 초록을 키우는 일은 생명력 가득한 존재와 삶의 한 부분을 공유하며 함께 시간 위를 걷는 일이다.

'제주스테이 비우다' 정원의 전경

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
좋았던 순간이라기보다는 소중했던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학부를 졸업하고 2년간 일본에 있었다. 일본에서 대학원 시험을 보기 위해 전문학교에 다녔다. 일본어라고는 몇 마디 못하던 그때, 홀로 머물렀던 일본에서의 생활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경험이었다. 히라가나를 익힌 지 1년 만에 일본어 1급을 땄다. 생활에 무리가 없을 만큼의 언어를 연마하고 혼자 생활을 꾸리고 적응하며 보낸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져다줬다. 아마 내가 제주로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시간이 용기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전통이란
나에게 전통이란 지금 여기 살아있는 나를 만든 DNA 같은 것이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분명히 내제하는 나의 뿌리와도 같은 것이다. 뿌리 없이는 잎도 꽃도 없듯 내게 전통은 내 안에 살아있도록 해야 하는 존재다. 고집스러움보다는 유연함을 가지고 지금 시대에 맞게 호흡할 수 있도록 되살려야 한다. 함께 호흡할 수 없는 뿌리는 언젠가 곧은 가지와 푸르던 잎마저 사라지게 할 테니 말이다.

Chapter 04 이상과 현실

과거 꾸었던 꿈
사실 전통음악을 전공했지만, 무대에 서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꿈은 무엇이 되고 무엇을 가지는 단편적인 꿈과는 좀 달랐다. 내가 진짜 원하는 꿈은 좋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왜 문화와 예술을 하느냐'고 물으면 '예술과 문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요'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이 되기보다는 내가 누리고 싶은 상태를 더 꿈꿨던 것 같다. 과거의 꿈이지만 현재의 꿈이기도 하다.
나의 현재와 만족도
현재의 나에 만족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어느 한순간도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으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흡족하게 생각하려 한다. 80년이든 100년이든 나는 이런 나로서 살아야 하는데, 늘 멋지고 좋은 모습만이 나라고 할 순 없다. 때로 못나고 실수를 하더라도 그런 나도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를 가질 수 있다. 내가 행복해지면 나의 기획도, 내가 기획한 문화 예술을 누리는 사람들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것은 기획자로서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내가 꿈꾸는 순간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내는 날을 기다린다. 한계점도, 타협도, 제한도 없이 말이다. 그것의 가능과 불가능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불가능하다 여기며 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로 끝나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해진다.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제주에 온 것처럼 내 생각과 삶, 시간의 중심에 내가 있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내가 꿈꾸는 미래의 순간이다.
내 인생의 한 줄
'Imagination is the beginning of creative. 상상은 창조의 시작이다.' 극작가 버나드 쇼가 한 말이다. 창조적인 결과물은 내가 상상한 그대로 펼쳐내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생각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이거나 편향적인 생각들이다. 그것 또한 내가 만든 다른 생각들일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생각을 경계한다.
앞으로의 계획
지금처럼 앞으로도 내가 상상하는 것을 현실에 옮기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나는 무엇을 하기 전에 보통 '무엇이 되겠다'라거나 '어떻게 하겠다'라는 구체적인 설정은 하지 않는다. 설정은 내가 만드는 '틀'이자 '한계'다. 지금 내가 정하는 목표와 계획은 아는 범위 내에서 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시각각의 나는 성장하고 변화할 것이다. 그저 나로서, 제한 없이, 자유롭게, 동시에 즐겁게.

나의 키워드

  • 자유로운 상태
  • 무한히
  • 생각
  • 풀려있는
  • 나에 대한 믿음
  • 가득차는 것들
  • 상상의 세계
  • 초록과 푸르름
  • 진정한 가치
  • 자라나는 모든
  • 모든 색이 섞인
  • 세상의 메카니즘
  • 미래의 스펙트럼
  • 현대적 변용
  • 흙과 풀의 냄새
  • 변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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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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