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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유산, 보이지 않는 것의 '정체'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랠프 앨리슨Ralph Ellison의 <보이지 않는 인간Invisible Man>의 도입부에 나오는 구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우리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존재로서 인지하고 있을까.
'우리 것'에서 '세계의 것'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상징 도안 (출처 유네스코 누리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공연예술 종목들은 오늘날 새로운 창작의 원료이자 연료가 되고 있다.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2003년 판소리, 2005년 강릉단오제, 2009년 남사당놀이·제주칠머리당 영등굿·강강술래·영산재·처용무, 2010년 가곡, 2011년 줄타기, 2012년 아리랑, 2014년 농악과 같은 공연예술 종목이 등재됐다. 이외 대목장·매사냥(2010), 택견·한산모시짜기(2011), 김장 문화(2013), 줄다리기(2015), 제주 해녀(2016)가 등재됐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무형문화재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상징 도안 (출처 유네스코 누리집)

유네스코는 오래전부터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관심을 가져왔다. 1997년, 산업화와 현대화에서 소멸되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를 채택했다. 이어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커지면서 2003년 유네스코총회는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채택했다. 문화유산의 보호 활동이 건축물 등의 유형유산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 즉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확대하였음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이정표가 세워진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무형유산'만큼이나 '잃어버린 무형유산'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유네스코의 취지에 따라 각국의 무형문화유산 지도가 그려졌다. 나라마다 생각하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개념도 달랐다. 프랑스는 뜻밖의 카드를 내놓았는데 그것은 바로 요리였다. 특화된 요리도 아닌 '미식 문화' 전반이었다. 프랑스의 요리사들은 2006년부터 '음식도 문화다'라면서 미식 문화 등재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그 뜻을 2010년에 이룰 수 있었다. 한국이 '특정 종목' 중심으로 무형유산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프랑스와 같은 입장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 전반'을 무형유산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느껴진다.

이처럼 '무형'에 대한 여러 입장과 생각이 혼재된 상태에서 '미래의 무형유산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도 이 제도가 주는 숙제 중 하나다. 이 제도의 상징 도안에도 이러한 뜻이 잘 담겨 있다. 도안 상정을 위한 국제공모전이 개최됐을 때, 알제리·볼리비아·불가리아·프랑스·인도·나이지리아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심사를 맡은 바 있다. 최종적으로 크로아티아 출신의 드라구틴 다도 코바체비치의 작품이 선정됐는데, 그의 도안은 형태가 없는 '무형'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끊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쨌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은 한국의 무형유산을 둘러싼 '등잔 밑'을 다시 보게 한다. 2009년에 등재된 남사당놀이를 기념하는 우표가 2017년에 발행됐고, 2016년 제주 해녀가 등재되면서 제주도 해녀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와 바닷가 소리를 담은 여러 공연예술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제주 해녀를 브랜드화한 '제주 해녀 해물맛 라면'이 출시되기도 했다.

남사당놀이 기념우표, 2017(출처 우정사업본부)
제주 해녀 해물맛 라면(출처 GS25)
'소유'에서 '공유'로

앞서 살짝 언급했지만,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제도는 국내의 국가무형문화재 제도와 겹쳐져 있으면서도 그 성격이 다르다. 전자가 '종목'을 지정하고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제도에 신경을 쓴다면, 후자는 '보유자'를 지정하고 그의 전문적인 '소유'를 통해 올곧게 전승하게 한다. 국가 차원에서 무형문화유산의 기록과 보존 정책도 국가무형문화재 제도가 인간문화재로 대변되는 특정인과 전수자·이수자로 집중됐다면, 인류무형유산은 말 그대로 인류가 그것을 향유하고 우수성을 알 수 있도록 향유적 시스템-교육·전시·공연-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문화자본이 공공화되고 민주화되고 있는 오늘날에 무형문화유산 제도가 보존-전승-향유의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고 평가되는 부분도 이 때문이다. 밀실에서의 보존(국가무형문화재)이 광장으로의 향유(무형문화유산)로 차츰 전환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주위에서 소비하는 문화 중에는 각국의 자부심이 묻어 있는 세계무형문화유산 종목이 의외로 많다. 공연예술로 국한지어 보면 일본의 가부키·가가쿠·노, 중국의 경극, 아르헨티나의 탱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무형유산들이 '공유'라는 슬로건 하에 수평적으로 만나는 여러 페스티벌과 기획 공연도 많이 오르고 있다. 즉, 각국의 전통공연예술을 만나고 즐기는 방식도 오늘날 점차 변화를 입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무형유산은 전통공연예술의 원료이자, 새로운 창작물의 엔진을 돌리는 연료가 되고 있다. 국립국악원이 파리에서 선보인 종묘제례악은 2015-16 한불 상호교류의 해의 개막을 알리며 전 세계로 알려졌고, 2002년부터 파리가을축제에 꾸준히 초청된 판소리 공연과 현지의 관심은 2003년의 등재에도 큰 힘이 됐다. 2016년 국립현대무용단은 국립국악원 무용단과 함께 강강술래를 재해석한 작품을 내놓았고, 장영규 연출의 국립무용단 무용극 <완월> 은 무형문화유산인 '완월도'를 소재로 삼았다. 남사당놀이는 타악기를 내세운 콘텐츠에 끊임없이 수혈을 해주고 있다.

한불 상호교류 종묘제례악(출처 국립국악원)
국립현대무용단x국립국악원 공동제작 <춤의 연대기>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특히, 2012년에 등재된 아리랑의 사례는 참으로 중요하다. '아리랑'은 그 어떤 노래보다 위대하고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앉은 예술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의 종목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특정 보유자를 선정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대중적 노래이고, 그렇다고 무심히 지나치자니 왠지 모르게 전통문화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한 것이 바로 '종목' 중심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제도였다. 따라서 이 제도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며 사각지대에 놓인 전통예술을 발굴하고 조명할지 더욱 기대된다.

이와 같은 취지를 알게 될 때, 무형문화유산의 활용한 공연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이러한 차원에서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국내 종목을 색다르게 보여주는 공연들을 매년 준비하여 선보이고 있다. 9월 30일,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리는 < All for One, One for All >은 김덕수와 안숙선, 100명의 사물놀이 연주자들과 300명의 스트리트 댄서들이 출연하는 장이다. 남사당놀이의 천재적 후예인 김덕수와 판소리의 대가 안숙선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또한 10월에는 주말 내내 세계무형문화유산 지정 종목인 남사당·농악·줄타기·줄다리기·종묘제례악·강릉단오제·영산재·처용무·판소리·가곡·강강술래의 원형을, 때로는 변화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상설공연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펼쳐진다. 특히 10월 6일에 열릴 <아리랑> 공연에는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함께한다. 세계무형문화유산을 상징하는 도안 속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에서 오늘날의 기타리스트가 읽은 아리랑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물놀이 40주년 기념 공연 < All for One, One for All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시리즈 <위대한유산, 오늘과 만나다>
  • 송현민(음악평론가)
  • 예술고등학교 시절에는 클라리넷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는 한국예술학을 전공했다. 그의 독특한 이력만큼 클래식과 전통공연예술 나아가 문화계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남다른 에너지와 열정에 많은 이목이 쏠린다. 공저로는 <박용구 심포카 시놉시스-먼동이 틀 무렵> (수류산방, 201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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