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그들의 이력서

맥락 없이, 우연히, 계절을 지나듯밴드 ‘AASSA’ 보컬리스트 한여름

한겨울에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입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녀가 연남동 한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올여름 ‘그렇게 뜨거웠다’고들 하는데, 올해의 대명사 같은 그 계절의 이름을 닮았다. 태양광이 그대로 내리쬐는 양지처럼 뜨거웠다가 곧 음지처럼 차갑다. 이미 그녀는 또 한 계절을 지나고 있었다.

Chapter 01신상털기

  • 이름한여름
  • 생년월일1991. 08. 22
  • 별자리사자자리
  • 특기/포지션보컬, 미학, 퍼포먼스
  • 소속 밴드AASSA, PLPL(PLOTPLAN)
  • 별명없음

Chapter 02인생이력

  • 2009동아 국악 콩쿠르 고등부
    정가 금상
  • 2010국립 국악고등학교 정가 전공 졸업
  • 2015RHOMBVS, [Fragility Test]
    (EP) 발매
  • 2016RHOMBVS, [Vacuum Times
    十長生圖] (EP) 발매
  • 2017영화 [능력소녀]
    음악 및 사운드 디자인
  • 2018AASSA, [TRÈS BONBON] 발매
  • 2018서울대학교 미학과, 작곡과 이론전공 졸업
    태화강 국제설치미술제 참여
    (사운드 및 퍼포먼스)
전통의 시작
어렸을 때 국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원래는 성악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열 살 무렵 사사해주시던 선생님의 영향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그 후 중·고등학교 시절 민요, 가야금, 정가 등 여러 전공을 오가게 되었다.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기 급급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잘 몰랐다. 내가 무엇 때문에 국악을 하는지, 정말 좋아는 하는지, 국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국악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차츰 정리할 수 있었다.
나의 변곡점
하나의 전공분야에 정착하지 못했다. 국악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여러 장르를 습득하고 경험했다. 지금은 한 장르에 머무르는 것이 내 꿈과 방향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십 대 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매 순간 코앞에 닥친 상황에 최선을 다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나는 국악 외에 팝, 재즈, 전자음악 등 여러 장르를 전전했다. 국악을 그만둔 후에도 ‘계속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노래’가 내 적성이기도 했으니, 적어도 노래만큼은 지속해야겠다 싶었다. 나는 그저 큰 산을 오르며 높게 종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넓은 평야를 횡단하고자 하는 스타일이었다. ‘단계’, 즉 높낮이의 개념보다는 ‘스펙트럼’의 폭을 우선시하는 편이었달까. 하지만 그것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것저것 보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변화에 주저하고 내게 주어진 상황에 멈춰서 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일이다. 나는 현재도 여전히 나의 소속과 장르를 정의하지 못한다. 단편적으로는 내가 활동하는 밴드의 이름밖에는 없다. 그 이전에 나는 그저 ‘나’인 거다. 하지만 이제는 ‘구태여 그것을 확정할 필요가 있는가’ 자문한다. 명칭과 소속에 무신경해진 지 오래다. 뭐가 되었든, 내가 하는 일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밴드 앗싸(AASSA)
특별한 수식보다는 사실에 기반한 설명이 좋을 것 같다. 시인이자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더였던 성기완,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그리오 아미두 디아바테, 그리고 보이스 퍼포머인 한여름이 함께 언어, 문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을 하고자 하는 밴드이다. 2016년 결성하여 2018년 첫 앨범인 <트레봉봉TRÈS BONBON>을 발매했다. 현재는 고마운 세션 김하늘, 서영도, 최윤희까지 함께 재밌게 꾸려가고 있다. 앗싸의 멤버들은 누구 하나 질세라 자신의 색채가 강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얽힌다. 그것이 앗싸의 매력이다. 물론 이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내고 한 데 규합하고자 하는 리더 성기완이라는 토대가 든든하게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앗싸 1집 TRES BONBON (2018) 커버
밴드 앗싸
밴드 앗싸

앗싸(AASSA)의 음악

앗싸는 아시안 밴드라고 많이들 부르시는데, 사실 아프리카 음악의 비중이 더 크다. 하지만 멤버들 누구도 갈피를 잡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방향으로 놓아두고 있다. 마음껏 흐르다 보면 새로운 지형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앗싸에는 다양한 장르가 뒤엉켜 있지만, ‘전통’ 국악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앗싸에 ‘국악적’ 요소가 있다면, 바로 ‘내 목소리’일 것이다. 가사가 있는 노래에서 목소리는 느낌과 해석을 좌우할 만큼 그 비중이 크다. 정가나 민요를 했던 내 목소리 속에 묘하게 창법이 남아있다. 애써 숨기려 하지도 않지만, 숨긴다고 숨겨지지도 않는다.

밴드 앗싸(AASSA)의 공연 모습

전통이 나에게 준 것
국악을 그만둔 후로는 국악이나 국악인에 대한 언급은 피해왔다. 나를 지칭하거나 설명하는 말로 ‘국악’이 들어가는 것도 대체로 사양해왔다. 전통을 지켜나가는 분들께 폐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던 부분도 있다. 국악계에는 어릴 때 시작하여 오래 하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내 경력은 견줄 것이 못 된다. 그래도 이십 대인 내 나이를 고려했을 때 십 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진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십 년을 민요, 가야금, 정가와 함께 보냈다. 인격과 인성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한 그 시절을. 따라서 애써 이 둘을 쉽게 분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릴 때는 국악의 희소성 때문에 ‘특이한’ 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딜 가나 쓸데없는 주목을 받는 것이 싫어 부정적 반항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나는 내 식대로 ‘어떻게든’ 살았고 내 식대로 ‘어떻게든’ 배웠다. 가끔 나도 모르게 국악을 베이스로 다른 예술/음악들을 해석하거나 받아들일 때가 있다. 가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악을 통해 감정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호흡의 길이가 다르다는 점. 이건 내게 큰 장점으로 다가올 때가 꽤 있다.
내가 발견한 전통의 가능성
‘절대 안 된다’는 건 없는 것 같다. 절대적 당위성이나 막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오히려 새로운 발견이 가능해진다. 특히 평생 하나에 매진하여 공들인 입장에서는 고수해야 한다는 정통성이 하나의 ‘정언명령’처럼 작용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까짓거’ ‘시도’해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적절한 타협 아래서 발전 가능성은 무한해진다. 포기가 곧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며, 스스로가 설득되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를 설득시킬 수 없다면 그 타협은 미묘한 경계에서 포기에 가까워진다. ‘이상하다’, ‘별로다’라는 등의 평가성 언어로부터 가벼워져야 한다. 그걸 견딜 수 있다면 나머지는 내가 원하는 흐름에 맡길 수 있게 된다. ‘이색’과 ‘특색’의 의미를 되짚어보면 그 맥락의 차이가 크지 않다. 물론 모두가 이색과 특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변화에 필요를 느낀다면, 시도해보면 된다. 어차피 그 이후는 본인이 감당할 몫이다. 열지 않은 문에 두려움을 느꼈다가 막상 문을 열면 허탈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다지 ‘대단한’ ‘별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장르의 경계와 한계에 대해
요즘 많이들 쓰지만 ‘선택적 변용’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타협을 어디까지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 타협의 아웃라인은 본인이 어디까지 납득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사실 나는 퓨전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배치만 달리하고 맥락이나 본질이 배제된 퓨전은 제대로 사유하지 않은 아티스트의 게으름을 포장하는 단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나 형식의 ‘그럴싸함’을 맥락 없이 가져다 쓸 바엔 자기 내부의 재편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오해할까 봐 보태자면 모든 퓨전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게으른’ 퓨전이 싫을 뿐.)
전통의 변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간은 빠르지만 세월은 때때로 느리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고 세상은 계속 변화할 것이다. 전통계도 이미 변화하고 있다. 국악을 향유했던 시대에서 그렇지 않은 시대로 흘러왔듯이 갈 길을 찾아가는 과정 중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대중들에게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실험적인 무대조차 언젠가 설명이 필요 없는 무대가 될 수 있다. 그 차이는 바로 익숙함이다.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자주 마주치는 수밖에 없다. 전통의 대중화에 대한 이야기는 전통계에 끊이지 않는 화두일 것이다. 그저 안 듣는 사람들에게 자주 노출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관객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한 감각을 열어두고, 그들의 반응이 축적되길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히 이런 것을 내가 말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다지 한 것도 없이 얻어버린 ‘명칭’인지라 괜한 부채감이 든다.)

인터뷰 중인 앗싸의 보컬 한여름

Chapter 03 개인 취향

추천할 만한
일 외에는 따로 시간을 내어 집 밖을 나서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주로 혼자 조용히 시작해 조용히 마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한다. 책이나 영화 같은 것. 최근 본 것을 꼽자면 책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2018)’, 주디스 버틀러의 ‘위태로운 삶(2018)’, 양효실의 ‘불구의 삶, 사랑의 말(2017)’이고, 영화는 ‘서치(2018)’, ‘흔적 없는 삶(2018)’, ‘어느 가족(2018)’, ‘콜럼버스(2018)’, ‘팬텀스레드(2018)’, ‘셰이프 오브 워터(2018)’이 좋았다. 모아 놓고 보니 더욱 취향과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다. 대개 불완전한 삶 내에서 인간이 각자의 위태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그것의 납득과 수용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서사를 다루고 있다.
나의 성격
선택적 귀찮음이 과한 편이다. 한눈을 잘 파는데, 대개 그 기조가 진지하고 심각하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에 과감한 편이랄까. 일명 덕질(마니아 성향)의 기본을 갖추고 있다. 논리, 방법론을 중시하지만 맥락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인생의 흐름을 보면 쉽게 눈치챌 수 있지만 정말 맥락 없이 놀고 맥락 없이 일한다. 사실 거의 ‘논다’. 다만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놀이로 치환하면서 논다. 너무 열심히 노느라 겨우 잠을 잘 정도이긴 하지만. 따라서 주변인들은 늘 내가 일에 매달려 사는 것으로 안다. 실은 그 말이 맞다. 그래도 일을 ‘놀이’로서 생각하고 행할 수 있다는 걸 큰 복으로 여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성실하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잔류한다. 학창시절에도 그랬다. 입시를 준비하며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속도가 빠른 한국 스타일에 최적화되어 살았다. 내가 짜놓은 플랜과 사회가 쳐놓은 체제 속에 강박적으로 맞춰 지냈다.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스트레스를 발산할 때조차 완전히 내려놓거나 풀어지진 못한다.

하고 싶은 일

음악은 어쩌면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그 비중이 높을 뿐.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말하는 자이자 동시에 듣는 자, 즉 하나의 ‘매개적 존재’이다. 따라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또 내가 내는 것 이외의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 포함되고자 한다. 나는 음악도, 미술도, 퍼포먼스도 ‘행한다’고 말하는데, 예술을 ‘행하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더 넓은 차원에서 소리를 듣고 기어코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런 과정에 불필요하거나 사소한 문제들로 지연이나 멈춤이 생기기를 원치 않는다. 다소 난해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게 주어진 큰 범주를 쪼개고 나누는 순간 필연적으로 틀이라는 것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나는 대개 틀 자체와 그 논리에 적응하는 데 곤란을 겪는 편이다. 가능한 그러고 싶지 않다.

사진1_RHOMBVS, ambient 퍼포먼스 / 사진2_ RHOMBVS, 행위/보이스 퍼포먼스사진3_RHOMBVS, ambient 퍼포먼스 / 사진4_PLOTPLAN, 행위/사운드 퍼포먼스

최근 주목하는
특정한 것은 없고, 아카이빙(기록)과 관련된 예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미술 쪽에서는 건축과 관련된 것들을 자주 찾아보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한눈을 파는 중이다. 미학으로 전과하면서는 장르 파괴에 가깝게 더욱 잡식이 되었다. 좋은 예술은 다 저마다의 논리와 특성, 그리고 멋을 가진다.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은 내게 다양한 텍스쳐로 인식되고, 들어온다. 음악을 전공한다고 해서 음악에만 정착하는 것은 ‘필사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살면서 좋았던 순간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많은 일을 기억하는 편은 아니다. 최근의 일이라면 ‘친구’와 관련된 것이 주로 좋았다. 반려견이 있는데 요즘 내게 가장 좋은 친구다. 얼마 전,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혼자 내려서 가자 ‘너 혼자 어디가!’라는 듯이 왈왈깽깽끄어엉(정말 이렇게 말했다)하며 울었다. 어느 누가 나를 그렇게 가지 말라고 목 놓아 부르겠나 싶었다. 나와 잠시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친구라니… 또 다른 친구는 가장 아끼는 동료이자 친구인 두 사람이 있다. 그 친구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딱히 먹은 것이 없어도 배가 부르다.
왼쪽부터_배 위에서 안부 확인을 하는개 / 괴롭힘을 잘 당하고 잘하는 개 / 자는 게 제일 예쁜 개 /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면 귀를 긁는 개

Chapter 04 이상과 현실

과거 꾸었던 꿈
학창 시절, 교실 뒤편에 해마다 ‘장래희망’을 적어 걸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뮤지션’이라고 적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게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이 말이다. 막연히 노래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아직까진 그 꿈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 같아 나름 대견하게 생각한다.
나의 현재와 만족도
요즘의 나는 매우 바쁘고 조용하다. 몸은 매우 분주하지만, 정신은 매우 고요한 상태이다. 전반적인 만족도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순간순간을 따졌을 때는 중간 점수를 주고 싶다. 원래 감정 동요가 그리 크지 않은 성격 탓도 있겠지만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내 인생의 변화는 대부분 우연한 계기로 찾아왔다. 클래식 성악을 하려다 국악을 배우게 된 것도, 대중음악을 시작한 것도, 미학과 서양 음악학을 전공한 것도, 밴드 앗싸를 하게 된 것도. 모든 것이 기회의 형태로 주어진 건 아니었지만 작고 큰 변화의 계기로 작용했다. 바람이 지나고 흐르는 물의 결이 바뀌듯 최대한 자연스럽게, 압박이나 강요 없이, 방대한 가능성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 인생의 한 줄
‘영혼의 자유와 조화는 양립할 수 있다.’ 규제에 맞춰 사는 삶과 자유롭게 사는 삶은 공존할 수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누군가에 섞이지 않는, 특이한,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등으로 표현되고, 조화로운 사람은 ‘함께 더불어, 동요하고 공감하는’ 등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상 이 두 가지는 상반되지 않는다. 동시에 가능하다. 내가 어떤 부분을 상황에 맞게 조율해가며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말이다. 우선 폭을 넓혀 두면 방대한 것이 내 안에 들어올 만한 ‘여유’가 생긴다.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은 그것의 결과로서 수반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스포일러를 조금 하자면, 개인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병행하다 보니 꽤 긴 시간 개인 작업에 집중하지 못(안)했다. 고여있거나 쌓인 것들을 풀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외부 활동을 조금 줄이고 정규 앨범을 차근차근 준비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내후년에는 미학과 대학원에도 진학할 생각이다.
전공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첫째로, 선생님이나 선배들의 눈치를 보지 말 것. 둘째로, 고민 상담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두루 해볼 것. 오히려 새로운 시각은 타 분야의 사람들과의 접점을 늘리는 것으로부터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경험을 해본 사람은 비록 다른 ‘언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할 필요가 충분하다. 나는 사실 전과를 생각했을 때, 같은 케이스를 겪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타 장르에 있는 사람, 다양한 경험이 있는 멘토의 피드백으로부터 요긴한 ‘단서’를 얻곤 했다. 만약 고민과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경우라면 누구에게 묻기 이전에 스스로 거듭 자문하는 것이 좋다. 본인 스스로 정리되지 않은 무엇은 남에게도 전달 불가하다. 쓸데없는 오해와 혼란, 고립감만 남을 뿐. 셋째로, 음악뿐 아니라 예술 내외의 다양한 장르/분야를 기웃거려 볼 것.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말 것. 넷째로, 경험에 아낌없이 투자할 것. 돈이든, 마음이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볍게 생각할 것! 떠나는 것이든, 돌아가는 것이든.

나의 키워드

  • 개-고양이-털짐승
  • 뒤통수
  • 다정한 마음
  • 담대함과 용기
  • 소리
  • 말과 서사
  • 관계
  • 논리-원리-회로
  • 달, 나무 그런 것
  • 까짓거
  • 초록과 파랑
  • ‘무엇’
  • 그림이든 사진이든
  • 낄낄거리기
  • 움직임
  • 아끼는 사람들
  • 우리 개의 이름
  • 인간
  • 구멍
  • 맥락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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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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