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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명약

공간의 시학을 품다국립무용단 ‘더 룸(The RoOm)’

방(房)은 가족의 집을 뜻하는 호(戶)와 모 방(方)자로 이루어져 있다. 방은 집에 소속된 개념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독립적인 공간이다. 그 일상의 상자 속에 ‘그’의 삶이 집약적으로 모인다. ‘더 룸’이라는 상자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scene 1.

몸의 표정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

더 룸의 콘셉트 사진
각자의 시간이 되면 저마다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머물지만 머물 수 없는 방랑자 같은 현대인들도 방에서는 철저히 ‘자신’이 된다. 그 방 안에서는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풀어지듯 몸도 그러하다. 마음에도 언어가 있듯, 몸에도 표정이 있다. 하루하루의 나이테를 쌓아가는 기억과 시간은 다른 주름, 다른 골격, 다른 느낌을 쌓아가며 저마다의 표정을 갖게 한다. 같은 몸을 가지고도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몸짓이 다른 이유는 기억과 시간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국립무용단과 현대무용 안무가 김설진의 만남은 서로 다른 몸과 영혼이지만 다르기 때문에 더욱 개별적일 수 있다. 각자의 공간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시간을 통해 ‘나’라는 존재로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국립무용단과 현대무용가 겸 안무·연출가 김설진이 합작하는 ‘더 룸’은 새로운 이야기가 덧입혀진 한국무용을 보여준다. ‘피핑 톰 무용단’과 ‘댄싱9’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현대무용 안무가 김설진의 이름은 이번 작품을 통해 인간의 몸짓에 대한 깊은 탐구와 독창적인 연출법으로 대중에게 각인시킬 예정이다. 머무는 사람들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의 의미가 8명의 무용수에 의해 따로 또 같이 공유되며 각자의 삶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콜라주 되어 방이라는 공간을 가득 채운다. 공간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세다. 우리가 별을 보며 우주 공간을 상상하듯, 방은 그 누군가의 삶을 단편적으로 담아 전체를 상상하게 한다. ‘더 룸’은 가상적 초현실을 통해 삶의 현실을 강하게 확장한다.
scene 2.

현실과 초현실, 그 사이 몸짓

안무가 김설진
김설진은 2013년 솔로 작품인 ‘Room’, 2015년에는 자신이 살았던 방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하는 창작극 ‘안녕’, 2016년에는 그가 예술감독으로 몸담고 있는 무버에서 다섯 명의 무용수가 각자의 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Room’을 발표한 바 있다. 오랜 시간 제주에서 서울로, 또 벨기에로 거주의 틀을 옮긴 그에게 ‘방’이란 한가지로 정의될 수 없는 다중적 의미였을 것이다. 뿌리 박히지 못한 삶에 대한 불안정함, 언젠가 떠날 것에 대한 암묵적 인지와 그에 따른 임시성, 나만의 공간임에도 타인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 아이러니함, 자신이 정해놓은 동선을 따라 행동하게 되는 강박, 문이라는 막의 여닫음을 통해 완전히 열려있지도 닫혀있지도 않는 이면성까지. 이번 작품에서는 무용수의 창작력을 바탕으로 예술적 표현 영역을 확장해가는 김설진과 국립무용단의 협업 방식에 주목해 볼 수 있다. 그가 무용수이자 크리에이터로 활동해 온 피핑 톰 무용단은 연극과 영화적 기법을 차용해 무용과 음악, 극적 요소가 결합된 스토리텔링형 연출 특성을 보여준다. 인간 삶의 조건에 주목하며 한편의 초현실적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게 표현하는 김설진표 작업은 무용극과 또 다른 방식으로 국립무용단이 지닌 다양한 표정을 드러낸다. 김설진은 ‘더 룸’ 제작에 앞서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개별적 역사를 탐구하는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무용 색채가 묻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설진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서로의 사고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이었다. 누군가가 제시/지시해놓은 이야기에 복제된 표현 방식을 끼워 맞추는 형태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내 몸의 표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국립무용단에서 지금까지 많은 창작적 시도를 해왔지만, 이렇게 무용수가 자신의 스토리를 모티프로 작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컨템포러리 댄스 부문에서는 다양한 실험적 움직임이 있었다. 연극과 무용을 자유롭게 오가는 피나 바우슈의 탄츠테아터를 시작으로, 즉흥적 움직임이 가지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호드웍스나 2017년 소매틱적 접근법과 즉흥춤을 기반으로 한 신작 ‘오프(Off)’를 발표한 국은미(숨무브먼트)까지 많은 시도를 거쳐왔다. 하지만 한국무용을 해왔던 이들에게는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지 않았던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는 것은 낯설고 두려운 경험이다.
scene 3.

하나의 방, 8명의 무용수

의미론적으로 사실 그들은 하나의 방에 있다. 누군가 그 방에 들어오면 그 사람의 시간이 담기면서 그 공간에 기억이 남는다. 관객은 그 공간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내려다본다. 무대 속 모든 인물과 이야기는 모두 현실이지만, 그 공간을 바라보는 객석은 초현실이다.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방을 들어왔다 나간다. 태평무를 추는 김현숙과 그 옆에 윤성철, 황용천이 있다. 옆 방에는 살풀이춤을 추는 김은영이, 또 다른 방에는 최호종과 그의 등에 업힌 박소영이 있다. 그 옆 방에는 문지애가 있고, 그 옆에는 격렬한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국립무용단의 훈련장, 김미애가 있다. 김설진의 엠비언스(분위기를 만드는 음향)가 전환될 때마다 8명의 무용수가 각자 자신의 기억을 따라 자신만의 몸의 표정을 지어낸다. 방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8명의 무용수가 여러 겹으로 중첩되며 다양한 색채를 뿜어낸다. ‘더 룸’ 무대 위의 방은 죽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무대는 디자이너 정승호의 손에 의해 완성됐다. 김설진과는 이미 국립무용단의 ‘리진(2017)’으로 합을 마쳤던지라 그의 까다로움은 익히 알고 있었다고. 그가 연출한 뮤지컬 <레베카>중 댄버스 부인이 ‘레베카’를 부르는 장면에서 방이 테라스로 전환되는 무대 연출은 뮤지컬계에서 단연 손꼽힐 명장면이다. 이번에도 그는 방을 고정된 형태가 아닌 회전, 상승, 하강 등의 움직임을 통해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삶의 살아있음, 동시에 불안한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고정불변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과 타자에 의해 변화하는 인간의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 방향으로 열리고 닫히는 5개의 문은 파편화되어 있지만 변형된 전체주의에 속한, 그리고 완전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간섭 당하고 간섭하는 현대사회와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것과 같다. 특히 현실적인 무대 장치는 꽤나 섬세하여 먹다 흘린 흔적, 창틀에 쌓인 먼지, 아침에 샤워 후 떨어뜨린 머리카락, 침대 헤드 뒤 읽은 부분을 표시해놓은 책이나 오래 전 책상 뒤로 떨어뜨린 동전 두어 개가 있을 것만 같다. 음악감독은 김설진 안무가와 오랜 호흡을 맞춰온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대표 정종임이 맡았다. 또한, 연극·뮤지컬·오페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긴밀한 소통을 바탕으로 의상의 미장센을 완결시키는 최원 디자이너가 합류해 각 캐릭터들을 세심하게 표현해 낼 예정이다.
왼쪽부터 김미애, 문지애, 황용천 / 박소영, 최호종

방을 나서며

장르마다 절대 법칙처럼 여겨 온 방식과 정의가 있다. 그것만이 정답이고 기준이라고 한계를 정하면 변용이 허용되기 어렵다. 형식은 차치하고서라도 손짓과 발짓은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장르적 습관을 바꾸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타리스트에게 첼로나 가야금을 연주해보라는 것 정도의 수준일 수 있다. 이처럼 다른 두 장르가 만나 한 무대를 펼치는 것을 시작으로 습관에 굳어 있던 몸은 풀어지고, 절대기준에서 벗어나 확장되는 과정을 겪으며 결국에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이 만나는 새로운 방이 될 것이다. 더불어 컨템포러리 방식으로 한국무용의 범주를 넓히고,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장르 출산율의 저조함에 대해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관찰자이자 관객으로 삶이 인간에게 주는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낯선 새로움을 통해 스스로 재단하고 배치해놓은 방의 틀을 깨는 경험을 해보기 바란다. ‘낯선 새로움’이라니…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추천명약
공연안내<국립무용단 '더 룸'>
  • 일시2018. 11. 8 목 ~ 10 토 ㅣ 평일 20:00, 주말 15:00
  • 장소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관람료R석 4만 원, S석 3만 원
  • 문의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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