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통처방전

삶에 기록된전통이라는 힘의 작용

글 김경은(조선일보 문화부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힘에는 작용과 반작용 법칙이 존재한다. 무언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앞으로 향하는 힘이 작용해야 한다. 우리는 힘을 볼 수는 없지만 힘의 현상을 통해 실체를 보게 된다. 삶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시간’의 힘이 필요하다. 시간에서 가장 중력이 센 추는 바로 ‘전통’이다. 그 추에 탄성과 마찰의 힘을 실은 두 아티스트를 만났다.
지난 9월의 첫 날, <문밖의 사람들 : 門外漢> 시리즈에서 ‘Nomad Syndrome’이라는 타이틀로 고향을 두지 않고 유목하는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공연이 있었다. 그 무대의 주인공은 세계 무대를 오가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다. 그는 사회라는 틀 속에서 스스로 타자화돼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의 아리랑을 들려주었다. 한편, 10월 7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는 또 다른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시인과 촌장’ 출신의 국내 정상급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300여 명이 함께 아리랑을 연주한 특별한 ‘아리랑’ 공연이었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그 익숙한 후렴 하나로 우리들 가슴을 후벼 파는 아리랑은 이 땅의 굴곡진 역사와 더불어 수많은 고개를 넘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희로애락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대표적 전통 노래다. 지역마다 다른 선율, 다른 노랫말로 다채롭게 전해져온 아리랑을 통해 대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한(恨)과 응어리를 음악으로 녹여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16일, 서울 서촌의 한 카페에서 이 두 사람을 만났다. 함춘호는 한때 성악 꿈나무였다. 중학교 때 형 어깨너머로 기타 치는 것을 보고 흉내 낸 것이 첫걸음. 예원학교를 다니다 대중음악으로 방향을 틀었고, 일렉과 어쿠스틱 기타를 넘나들며 눈부신 실력을 발휘해 1980년대 이후 나온 가요 앨범의 80% 가까이에 참여한 ‘최다’ 연주자가 됐다. 1981년 이광조 앨범의 기타를 맡아 가요계에 입문한 뒤 듀엣 ‘시인과 촌장’을 거쳐 가수가 아닌 연주자의 길을 걸어왔다. 조용필·송대관·태진아·이문세 같은 중견 가수부터 투애니원·샤이니 등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망라한 가요 앨범에 그의 기타가 녹아 있다.
다양한 장르와 무대에서 자유롭게 유목 중인 최고은. 일반 관객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녹음실에서 특별한 공연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2016년 2월부터 자신의 연희동 녹음실 ‘스튜디오로그’에서 ‘이얼스 업(Ears up)’이란 월간 공연을 열고 있는 그는 열 살 때부터 가야금 산조(散調)와 가야금 병창(竝唱), 판소리를 배웠던 국악도다. “고향이 ‘예향(藝鄕)’ 전라도 광주다. 학교에 방과후수업으로 가야금부가 있어 가야금에 호기심을 가졌다. 배울 땐 재미있었는데 서울대 국악과 진학에 실패하면서 국악은 취미로 두고, 어쿠스틱 기타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최고은의 말이다. 하지만 최고은은 “국악을 했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에게 ‘문 밖(타장르)의 시선으로 본 전통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함춘호는 “6~7년 전 가야금 합주단과 작은 무대에서 공연했는데, 그때만 해도 가야금으로 모던한 팝 가락을 연주하는 게 어색했다. 하지만 2015년 10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정기공연 ‘산조하조(散調何造)’에서 류형선 예술감독과 ‘기타 산조 협주곡’을 선보이면서 가능성을 맛봤다. 그때 프랑스 피아니스트 로랑 권지니(Guanzini)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산조를 무대에 올리고 연주했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함춘호는 “처음엔 ‘기타로 아리랑을?’이라는 낯선 제안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다 같은 음악인데 뭐가 문제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대중이 좀 더 쉽게 아리랑을 이해하길, 그래서 좀 더 가까이 즐길 수 있길 바랐다”고 말했다. 최고은은 “내 과거의 시간 안에 국악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 그저 우리가 사는 시대의 아리랑을 불렀다”고 이야기했다.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아리랑 공연 모습함춘호 x 아리랑

<문밖의 사람들 : 門外漢> 최고은의 공연 모습최고은 x 아리랑

#1

아리랑의 익숙함,그 안에 새로운면모를 찾아

함춘호 솔직히 준비하는 과정에선 죽을 것 같았다. 일단 양악기와 국악기는 소리를 내는 방법이 달랐다. 양악기는 튠(tune·조율)에 상당히 민감하다. 국악기는 고정된 음정이 아니라, 손으로 현을 누르고 떨면서 조절하는 기법이 많다 보니 서로 전혀 다른 음정이 나와서 두 악기가 합쳐지면 어기적거렸다. 그러나 당시 젊은 연주자들이 열심히 노력했고, 서로의 그런 노력과 이해가 전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친숙하게 해줬다. 그 과정에서 아리랑을 만났으니 내게는 뜻깊은 순간이다. 최고은 사람들이 내 노래만 들으면 남도 서편제를 부르는 중년 여성으로 봤다. 그게 싫었다. 국악은 발음이 정확하다, 탁탁탁탁. 그걸 감추려고 내 노래들은 영어로 작업했다. 그런데 8년쯤 지나니 더 이상 감출 수 없어졌다. 왜냐하면 노래라는 건 내가 누구인지 기록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내 과거의 모습을 투영해야 하는 것. 날 것의 느낌으로 부르자 ‘한국적’이라는 평을 얻었고, 기타를 칠 때도 가야금을 뜯는 것처럼 국악적 표현이 나왔다. 결국 지난해에 ‘오늘의 아리랑’을 주제로 앨범을 냈다. 내가 생각하는 전통은 누구나 다 아는 아리랑 같은 것인데, 여기서 아리랑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다. 모두가 이걸 들으면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고, 그건 곧 그때의 아리랑이란 얘기다.
가을 햇볕만큼 좋았던 그날의 분위기
함춘호 내가 생각하는 전통도 고은씨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연해주로 이주해 살았던 선조들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시작하는 아리랑에다 자기 나름의 삶의 형태들을 붙여 노래하는 기록 영화를 봤다. 결국 아리랑이란 그리움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고 싶은 엄마의 품일 수도 있고, 한 시대의 가요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음악이 몇 세대가 지난 후에는 또 다른 아리랑으로 재해석돼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전통은 계속 변하고 있는 것 같다. EBS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에서 ‘헬로 루키’ 최종 예선 올라가는 연주자들 보면 국악 하는 친구들과 인디음악 하는 친구들이 국악 또는 팝 베이스로 국악과 양악이 혼재돼 있는 음악을 만든다. 그 음악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가고. 국악은 양악의 선율을 쓰고, 양악은 국악의 멜로디를 쓰면서 다양하게 서로의 장점을 섞으려고 하는 시도가 생기는 것 같아 반갑다. 지금 당장 결과를 볼 순 없지만 이런 시도가 계속되면 발전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2

아리랑이 준 의미,삶과 사의 찬미

최고은 ‘아리랑’이라는 노래 자체에 집중하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과 정서를 담아내는 게 ‘아리랑’이라는 거다. ‘아리랑’은 너무 흔하고 지겨우니 그만 우려먹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한다. 얼마 전 엄마가 파김치를 담아 보내주셨다. 어제 공연 끝나고 물에 밥을 말아 파김치만 얹어 먹었는데, 지난 며칠간 먹은 그 어느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진부하고 흔한 이야기일지라도 왜 계속해야 하는가? 원료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을 잊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파김치가 지겨우면 그걸 파전으로 바꿔 만들 수도 있지만, 원료가 담고 있는 에너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힘이 되기 때문에 놓을 수 없다. 함춘호 고은씨는 우리 전통의 생(生)음악을 한다. 2014년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서며 이름을 알렸는데, 외국 친구들은 하지 않는 자기만의 음악을 고은씨는 한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오른손가락으로 마치 가야금을 뜯듯이 현을 뜯는다. 상당히 동양적이어서 눈에 확 띈다. 거기서 자신만의 강점이 생긴다. 재밌는 게 아프리카의 블루스와 우리의 소울은 갖고 있는 색채가 아주 비슷하다. 블루스도 노동요라 해서 힘들 때 부르는 노래인데, 우리의 농요도 힘을 나누기 위해 돋아주고 받아치면서 농악이 됐다.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고유한 컬러가 있는 것이다. 최고은 여기는 지금 서촌의 한옥이지만 한 발짝만 나가도 돈까스, 스시, 쌀국수를 파는 음식점이 즐비하고, 이건 어느 나라를 가도 똑같은 풍경이다. 이 상황이 나는 불만스럽고 슬프기도 하다. 해외에서 하도 내 공연을 유니크하다, 동양적이다 하길래 내 음악의 뿌리를 찾아봤다. 고려 시대 때 사람을 반기면서 하는 말이 ‘아리’, 죽을 때 보내는 말이 ‘쓰리’라고 하더라. 나는 이 삶을 버텨내기 위해 음악을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과거에 국악을 했고, 그게 감춰지지 못하고 나오는 거다.

#3

전통을 찾아가는길목을 헤매며

함춘호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일본에서 외국 퍼커션들과 협연을 했다. 그때 외국 연주자들이 당황했다. 우리 국악기는 울림이 없이 ‘땅! 따악!’ 직접적으로 부딪힌다. 반면 서양 악기 퍼커션은 ‘더엉 덩!’ 소리가 풍성하다. 리듬의 형태나 비트가 달라서 만나질 못해 협연이 잘 안 됐다. 그런데 지금 국악 하는 연주자들 보면 상대의 소리에 대한 배려가 많다. 서로가 고민하면서 교차점을 찾아 새로운 형태의 음악과 소리를 만들게 되는 거다. 우리의 창이나 판소리를 보면 여백의 미가 있다. 양악기가 갖고 있는 소리의 질감에 우리 전통의 멜로디가 잘 어우러져서 신선하고, 특이한 대안을 곧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과도기일 뿐. 최고은 맞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고, 앞으로의 나의 아리랑은 오늘날의 아리랑보다 더 촘촘하게,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거다. 함춘호 클래식 작곡가 이지수가 만든 ‘센티멘탈 왈츠 아리랑’을 일흔 넘은 어르신들 앞에서 연주했더니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하셨다. 얼마 전 울산시 울주군 신불산 간월재에서 열린 ‘2018 울주 오디세이’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그 공연을 보기 위해 1만여 명이 1000m 높이 산을 두 시간 반 동안 올라왔다. 거기서 ‘아리랑’을 연주했는데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보더라. 정통 국악이었으면 고루하다, 진부하다 느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기타 한 대만 가지고 ‘아리랑’을 연주하니 기타가 갖고 있는 울림에 아리랑 선율이 섞여 신선했다. 전통과 현대가 혼재해 새로운 생각과 감성이 펼쳐진 것이다.

[촬영 비하인드] 춘호) 우리 듀오 앨범 자켓이니 잘 찍어주세요! 고은) 앗! 저희 듀오 결성해요? 하하하

이들은 “요즘은 국악을 전공하는 친구들도 드럼이나 베이스 등 서양 악기를 함께 배운다. 그 악기들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국악기를 만들게 되고, 타인의 문화에 대해서도 이질감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시대에 어떻게 대중 속으로 전통을 잘 끌고 들어가서 어렵지 않은 대중음악으로 만들어 내는가가 아닐까? 국악에 기초를 둔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만의 포크 음악. 훗날 전통이 될.”

  • 김경은(조선일보 문화부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 2006년 11월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눈으로 미추를 구별할 수 없는 암흑을 좋아한다. 그 어둠 속에서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 코로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를 있는 그대로 판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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