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통처방전

남북 전통문화 교류,하나로 소통하는 길을 찾아서

글 노승림(음악칼럼니스트, 문화정책학 박사)
남북한의 화해모드와 맞물려 전통문화예술계도 움직이고 있다. 오랜 시간 단절된 만큼 달라진 남과 북의 문화, 이제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때이다. 젊은 세대야말로 남과 북의 문화예술 교류의 중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봄은 오는가
  • 세상 모든 것들이 급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현기증 나는 변화는 남북 관계일 것이다. 남한에게 북한은 늘 그렇듯 변화무쌍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는 무찔러야 하는 적이었다가 오늘은 보듬어야 할 가족이 되어 왔다. 긍정적인 변화의 기류가 조성될 때마다 늘 마중물이 되어왔던 건 역시 예술이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올해 2월 북측은 삼지연 관현악단을 보내 우호적 메시지를 보내왔고, 남측 또한 4월에 ‘봄이 온다’는 제목 아래 예술단을 파견해 이에 화답했다.
  •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의지와 맞물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분야의 기관 및 단체들은 당연하다는 듯 앞으로 활성화될 남북 교류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그럼에도 전통문화예술계가 이 흐름에서 누락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전통음악과 전통 무용은 지난 세월 남북 문화 교류에 가장 앞장섰던 분야다. 1985년 남북 적십자사가 8.15 광복절 40주년을 맞아 개최한 제1차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 공연단에는 민요합창단과 민속무용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가들은 정부 주도형 남북정책에서 독립하여 스스로 교류의 주체가 되고자 시도했다. 1990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범민족통일음악회’는 고(故) 윤이상 선생이 1988년 처음 제안하여 예술가들을 주축으로 성사되었던, 최초의 민간교류 행사다. 당시 올해 타계한 황병기 가야금 연주자를 단장으로 14명의 전통예술인으로 구성된 서울 전통음악연주단이 방북하여 북쪽 김원균 작곡가를 주축으로 한 평양음악단과 함께 여섯 개 공연장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990년 12월에는 북측 평양민족음악단이 서울로 와서 송년 통일음악회를 개최하며 화답공연을 가졌다. 이때 남쪽의 황병기와 북쪽의 성동춘이 함께 작곡해 연주한 노래가 바로 ‘통일의 길’이다.
  • 당시 남북교류를 주도하던 예술가들은 분단 이전에 태어났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남북은 한 나라, 한 핏줄이라는 의식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교육받은 세대였다. 그것은 북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 처음 만난 남북의 예술가들이 서로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오랜 세월 헤어졌던 피붙이처럼 눈시울을 붉히고 얼싸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강력한 한민족 이데올로기의 발현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민족 이데올로기는 남북의 예술가들을 당황하게도 만들었다. 수십 년간에 걸친 분단으로 남북한의 문화는 같은 뿌리에서 싹이 텄지만 모양과 가치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윤이상이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처음 제안했던 것도 북한에서 경험한 문화적 이질감에서 비롯된 충격 때문이었다. 윤이상은 “남북한이 똑같이 민족정신으로 돌아가서 꾸준히 노력하면 민족통일은 반드시 가능하다고 본다”고 희망했다. 1990년 평양을 방문한 음악학자 노동은 또한 “우리들은 만나는 연습을 통하여 민족 간의 ‘다름’을 줄이고 ‘같음’을 더 찾아야겠다”고 방북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그 시대의 남북문화교류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1990. 10. 14 범민족통일음악회 남측 대표단 북측 판문점 통과 사진 (출처 e영상역사관)
우리 겨레 대대로 오고가던 길 산이 높아 오가지 못하는가 네가 오고 내가 갈 통일의 길을 우리 서로 손잡고 열어나가자 - 리성철 작사/황병기·성동춘 작곡 <통일의 길> 중
냉전과열전 사이
  • 범민족통일음악회 이후 한동안 활성화되었던 민간 예술교류는 이후 남쪽의 정권 교체와 더불어 타의에 의해 다시 오랫동안 단절됐다. 단절의 시간 동안 남쪽도 북쪽도 많은 것이 변화했다. 북쪽은 대외적으로 민족음악보다는 대중음악을 내세우는 신세대 리더가 정권을 물려받았다. 남쪽에서는 남북 교류에 있어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던 선구자들이 천수를 다해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특히 깃발을 꽂을 연륜 있는 경험자들의 상실과 부재는 현재 남북 교류에 있어 전통문화예술계가 선뜻 앞장서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에서도 치명적인 듯 보인다.
  •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 젊은 세대들의 통일의식과 북쪽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젊은이들에게 북한은 소원한 대상이 되었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정서적 공감대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아졌다. 통일에 투철한 민족적 사명감이 있는 혹자들은 이런 세태를 개인주의적이라 한탄하지만, 나는 이런 젊은이들의 거리를 둔 관점이 오히려 건전하다고 본다.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뀌는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이고 살아온 두 사회에게 순식간의 통합을 바라는 것은 무리이며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나를 학대해온 고용주가 어느 날 갑자기 친자 확인서를 들고 나타나 ‘내가 네 애비다’하고 나타난다고 효심이 싹틀 리 없다는 것을 우리는 막장 드라마를 통해 익히 학습해 왔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양 정부는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분단 상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지금 남북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한 핏줄임을 입증하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회복이다.
신영복 선생의 서화 通(통) (출처 사단법인 더불어숲)
신뢰회복은 상대방이 누리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20세기에도 남북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문화적 이질감이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 교류의 과정에서 정통성 보존을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음악계가 다른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성장한 북한의 민족예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오해와 갈등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한민국 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젊은 전통예술가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젊은 예술가들이 가진 타인에 대한 관대함과 포용력이야말로 ‘가깝지만 먼 관계’인 북한과의 교류에서 실로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 때문에 나는 다가오는 문화예술 교류에 젊은 세대들이 더욱 주도적으로 나서주길 희망한다. 이전 세대를 상처 입힌 전쟁의 기억도, 증오와 적대감도, 그 어떤 부정적인 영향들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건강하고 순수한 젊은 세대에게 또 다른 의미의 ‘통일의 길’을 고대한다. 고(故) 신영복이 남긴 글자처럼 나누어진 것을 억지로 하나로 합하는 통일(統一)이 아니라, 서로 다른 남북이 각자를 존중하며 하나로 소통하는 통일(通一)의 길을 그들이 새롭게 개척해주길 바란다. 소통이 시작되면 문화적 이질감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황병기 선생은 생전 “우리 문화가 그만큼 다양해지고 풍성해지는 것이지. 왜 문화를 획일화하려고 들어”라고 일침을 남긴 바 있다. 그 풍성한 문화를 누리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헤세의 다음 글귀를 선사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 둘은 태양과 달이며 바다와 육지다. 우리의 목표는 서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서로 보고 존경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중
  • 노승림(음악칼럼니스트, 문화정책학 박사)
  • 현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자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재학시절, 학업에 흥미를 붙이고자 듣기 시작한 독일가곡이 그를 문화정책 학자의 길로 인도했다. 북한의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앞으로 남북문화교류에 있어 그의 역할이 기대된다. 저서로는 <예술의 사생활 : 비참과 우아>, <나와 당신의 베토벤>(공저), 옮긴 책으로는 <페기 구겐하임>, <음악과 권력>, <평행과 역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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