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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이야기]통일신라의 최종병기, 대금

글 천수림(아트저널리스트)
하나의 취구, 여섯 개의 지공, 대나무 사이로 산호흡으로 영의 소리를 내는 악기. 대금은 어떻게 통일신라의 최종병기, 신물(神物)이 되었을까.
부혜(鳧徯)는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한 기이한 새로서, 흉조(凶兆)의 상징이다. 옛날 사람들은 부혜를 매우 불길한 새로 여겼다. 오임신(吳任臣)은 사람 얼굴을 한 새는 아주 길하지 않으면 아주 불길한데, 길한 것으로 빈가(頻迦)가 있고 불길한 것으로 부혜가 있다고 하였다. 『산해경(山海經)』 ‘서산경(西山經)’ 중

사람의 얼굴에 팔이 달려 있으나 몸체는 비늘로 쌓여 있고, 새의 날개를 한 ‘가릉빈가迦陵頻伽, Kalaviṅka’ 1)는 대금을 불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이 소리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천상의 소리로 형상화될 수 없다. 이 상상 속의 새는 히말라야 설국雪國에 산다고 전해진다. 가릉빈가는 알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세계 어느 곳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 소리는 매우 아름답고, 소리 또한 묘하다고 해 묘음조妙音鳥, 미음조美音鳥라고도 불리고, 극락에 깃들여 있다 해서 극락조極樂鳥라고도 불린다.

서산경 속 ‘빈가’는 가릉빈가를 가리킨다. 태어나기도 전에 소리를 낸다는 전설 속의 새가 부는 악기는 오늘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대금이다. 히말라야에 산다는 설국의 새는 시공을 넘어 통일신라로 날아들었다. 이 상상 속의 새 이미지는 통일신라 시대의 봉암사, 조선 시대 은해사 백흥암, 조선 시대 통도사 취운암,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석탑 등에 남아 있다. 그 배경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흥미로운 설화가 남아 있다.

봉암사 지중대사적조탑 가릉빈가문

왕은 놀라고 기뻐하여 오색 비단과 금과 옥으로 보답하고 사자를 시켜 대나무를 베어서 바다에서 나오자, 산과 용은 갑자기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왕이 감은사에서 유숙하고, 17일에 기림사(祗林寺) 서쪽 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 이공(理恭) 즉 효소대왕(孝昭大王)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 천천히 살펴보고 말하기를, “이 옥대의 여러 쪽들이 모두 진짜 용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라고 하셨다. 태자가 아뢰기를, “쪽 하나를 떼어서 물에 넣어보면 아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왼쪽의 둘째 쪽을 떼어 시냇물에 넣으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곳은 못이 되었다. 이로 인해 그 못을 용연(龍淵)으로 불렀다. 왕이 행차에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月城)의 천존고(天尊庫)에 간직하였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는 개며, 바람이 잦아들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이를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효소왕대에 이르러 천수(天授) 4년 계사(癸巳)에 실례랑(失禮郞)이 살아 돌아온 기이한 일로 해서 다시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권3 탑상4 ‘백률사(栢栗寺)’ 중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대금을 가리킨다. 대금은 통일신라 이후 고구려나 백제에서 받아들인 ‘횡적橫笛’이라는 악기 이름을 대금이라 부르며 ‘신성’스러운 악기로 등극한다. 대금은 단순한 관악기가 아닌 권위를 지닌 신물神物이었던 것이다.

(좌)감은사지 서탑 청동사리 (우)안압지 출토 동판불 | 출처 우리역사넷

대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2)에 남아 있다. 신라에 삼현삼죽이 있는데 당시 신라에서 연주된 세 개의 현악기와 세 개의 관악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삼죽은 대금, 중금, 소금을 삼현은 가야금, 거문고, 향비파를 이른다. 고구려의 거문고, 가야국의 가야금, 고구려와 백제의 횡적은 통일신라로 들어왔다. 횡적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수서>, ‘동이전’과 <북사> ‘고구려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 ⓒ문화재청

‘고구려전’에는 ‘고구려 음악에 5현금, 금, 쟁, 피리, 횡취, 소고가 있다’로 기록돼 있고, ‘백제전’에는 ‘백제음악에 고, 각, 공후, 쟁, 우, 지, 적이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고려사> 악지에는 대금의 구멍이 세 개라 기록돼 있고, 중금은 열세 개, 소금은 일곱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대금 형태는 고려 시대를 기점으로 갖춰졌다. 백제의 횡적은 통일신라 이후에 ‘대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어떻게 김유신의 공덕과 명예를 빌려 신적神笛, 신물神物의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을까.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한 신라는 각 나라의 악기 뿐 아니라 문화를 수용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 이 비밀은 아마도 ‘만파식적’의 설화로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만파식적 설화에서 대나무가 낮에는 분리되고, 밤에는 합해지며, 소리란 합한 후에 난다고 묘사하고 있다. 통일을 이룬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을 통합하는 하나의 ‘상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특히 음악과 악기는 이런 ‘신성’을 부여함으로써 저항할 수 없는 통치수단으로 역할을 다한다. 이들이 음악을 통치수단으로 삼고 중시한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신라의 화랑도는 자신들의 이념을 풍류도로 삼았다. 풍류도는 음악을 수행방법으로 삼았고, 평소에도 음악은 천지귀신도 감동시킬 만큼 강력하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만파식적은 궁궐인 월성에 ‘하늘이 내린 보물을 보관하는 장소’라는 뜻이 담긴 ‘천존고天尊庫’에 보관된다. 지난해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그동안 발굴한 신라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창고를 지었다. 창고 이름을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만파식적과 가야금을 보관하던 천존고의 이름을 그대로 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만파식적’이 등장하는 시기인 신문왕 시절 비록 통일을 이루었으나 여전히 국내 정세는 불안정했다. 신문왕은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인물이다. 신라는 오랜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흔이 남아 있었다. 귀족들은 왕권이 강화되는 것을 두려워해 반란을 일으켰고, 백제와 고구려의 옛 영토에서는 여전히 유민들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왕국의 부흥을 꾀했다. 국내뿐 아니라 당나라 역시 신라에게는 위협을 가하는 강국이었다. 국경의 정세는 더 위협적이어서 무엇보다도 국내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문무왕이 “종묘의 주인은 잠시라도 비어서는 안 될 것이니 태자는 나의 관 앞에서 왕위를 계승하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불안정했던 것이다. 대왕암은 이런 걱정과 우려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장소이다.

문무왕은 지의법사에게 “짐은 죽은 뒤에 호국하는 큰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는 것이 소원이오.”라고 했다. 비록 짐승으로 다시 태어난다해도 왕권을 위해서라면 괜찮다는 의미다.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이니 비록 추한 갚음을 받아 축생이 된다 하더라도 나의 뜻에 맞는 것이오.”라고 말이다. 문무왕은 화장 후 유골은 대왕암에 안치되었다. 문무왕의 선택은 어지러웠던 당시 정국을 정면돌파하려 했던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대에는 그리 안정을 이루지 못했다. 신문왕이 즉위한 후에 국학을 설립하고 군사제도와 지방조직을 정비하고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을 통해 통일신라는 안정과 평화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왜구의 침입 등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럴 때 국내 화해와 통합,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내기 위한 강렬한 도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통합을 상징하는 ‘만파식적’ 설화가 등장했던 진짜 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라의 지도층은 신라 땅이 바로 불국토라는 이상적인 사회상을 제시했다. ‘서방정토’, 즉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정토淨土신앙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 왕실과 지배층이 중심이 되어 신봉했다가 통일 이후에 백성들에게까지 전파되었다. 신라에게 있어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사회를 운용할 수 있는 통치체제 역할을 했다. 백성들에게는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방편으로 대외적으로는 나라를 지키는 방법으로 채택되었다.

불교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가릉빈가가 만파식적에 등장하는 ‘대금’을 부는 시각적 도상은 당시 백성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상상해 보자. ‘삶의 위로와 호국’의 지표인 도상은 사찰, 탑, 불상, 조각 등등에 빈번하게 등장했다. 신라인들은 이 이미지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지표를 극락왕생으로 삼았다. 마치 천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듯한 대금 소리는 그 어떤 악기보다도 신라인의 이상향을 대변하는 소리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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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가릉빈가는 범어 가라빈가(Kalavin ka)의 한자표기이다. 『대지도론』 권28에 “알 속에서 깨어나기 전에도 울음소리를 내며, 그 울음소리가 세상의 어떤 새와도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다.”고 기록되어 있다.

2)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에 실린 고구려·백제·신라의 음악 기사를 모아놓은 음악지로 우리나라에 전하는 최고의 음악 사료.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천수림(아트저널리스트)
  • 삶은 여행의 여정이며, 여행의 영향력은 삶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믿는다. 2018서울사진축제 프로그램 디렉터, 월간 <사진예술> 편집장으로 활동했고, 각종 미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KBS1 라디오 <문화공감>에서 ‘중국예술기행’을 진행했고, 저서로는 <북경살롱>, <엄마네 레스토랑으로 저녁 먹으러 갈래?>, <세 도시 이야기(공저)>가 있다. 현재는 아트저널리스트이자 시각문화 비평가로 다양하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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