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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된 스펙터클, 협업의 회복<신진X미술관> 프리뷰

글 성혜인(음악평론가)
면면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계에 클리셰가 되어버린 컬래버레이션. 명약관화한 시도는 더이상 스펙터클하지 않다. 그럼에도 예술계의 시도는 멎지 않는다. 가상과 현실을 제약없이 넘나드는 21세기에 창조를 향한 인류의 갈망은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다른 장르와의 결합은 전통예술계에서 부인할 수 없는 주된 흐름이 되었다. 수년 동안 전통의 ‘새로움’이 긴박하게 요청되면서 장르 간의 이종교배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폭증했다. 물론 새로움은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급진성의 가치는 정체(停滯)가 지속될 때 소환되므로, 새로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현상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그런데 전통예술계가 감지하고 있는 활력의 부재란 도대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또한 정체를 타파하기 위해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러한 시도는 왜 특별한 논의 없이 새롭다고 평가되는가?

그간 전통예술계의 시도를 살펴보면 별다른 고민 없이 여러 장르의 외피를 병렬적으로 나열한 결과물이 대다수다. 장르의 결합은 너무나도 쉽게 스펙터클이 되어버리고 이 스펙터클은 예외 없이 ‘실험’이나 ‘새로움’이라는 이름 아래 소개된다. 이렇듯 전통예술계가 표방하는 급진성은 제도를 통해 상품화된 측면이 강하다. 결국 정체란 전통예술만으로 시장성과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상할 정도로 과열된 이 흐름 속에서 정말로 새로운 시도를 구상한다면, 문화공간음악회 <신진X미술관>은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9월부터 10월까지 세 명의 멘토와 신진예술가들이 미술관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기획이다. 멘토와 신진예술가들의 지향점뿐만 아니라 각각의 전시공간과 전시의 맥락이 모두 달라 까다로운 작업이 예상되지만 그만큼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MENTOR : MENTEE

이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양분해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성악가 박민희, 대금연주자 이아람, 안무가 장혜림 멘토와 신진예술가들의 협업이라는 측면이다. 이미 전통예술계의 많은 프로젝트가 멘토링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이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사제간의 위계에서 벗어나 이제 막 자기 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창작’ 프로세스를 조언해줄 멘토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문화공간음악회 <신진X미술관>의 세 멘토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공연의 창작 프로세스를 실험하고 경험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정립해왔다. 따라서 작업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시행착오에 대한 기술적 대응부터 자신의 작업을 비판적으로 개념화하는 과정까지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실효성 있는 조언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박민희 : 이나래

9월 15일(일)에는 판소리에서 여성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거나 배제되었다는 문제의식 아래 꾸준하게 작업하며 정가악회, 이날치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온 소리꾼 이나래가 가곡의 음악적 구조와 공연예술의 기본 전제를 적극적으로 실험하는 박민희 멘토와 함께 고민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공연이 예정된 공간인 백남준아트센터 역시 흥미롭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생태감각>은 생태와 미디어, 인류세 등의 개념을 다룬다. 전시의 취지와 맥락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전통예술과 어떤 방식으로 접점을 만들어 나갈지 주목된다.
박민희&이나래

이아람 : 창작음악앙상블 본

10월 5일(토)에는 음악그룹 나무의 대표이자 블랙스트링 멤버, 여우락 페스티벌 음악감독 등으로 활약 중인 이아람 멘토와 온전히 국악기만을 사용해 음악을 만들고 대한민국대학국악제,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등과 같은 대회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는 창작음악앙상블 ‘본(本)’이 만난다. 이들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셩 : 판타스틱 시티> 전시와 협업을 시도한다. 이 전시는 수원화성이라는 역사적 공간과 정조의 이상향을 모티프로 삼았다는 점에서 대중들이 흔히 떠올리는 전통예술의 이미지를 충족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사를 모티프로 삼은 미술작품과 전통음악을 단순히 중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개념적으로 진전된 작업이 수반된다면 분명 흥미로운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아람&창작음악앙상블 본

장혜림 : Art.Sun

마지막으로 10월 26일(토)에는 나인티나인 아트컴퍼니 대표이자 크리틱스 초이스 최우수 안무상, 2016년 한국비평가협회 작품상을 받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장혜림 멘토와 젊은 안무자창작공연 등을 통해 한국무용의 동시대성에 대해 고민하는 art.sun이 함께 작업한다. 이들의 공연이 열리는 영은미술관은백남준아트센터나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보다 공간 운용의 폭이 넓다. 게다가 방혜자의 예술세계를 다룬 <빛의 세계를 그리다> 전시는 영상이나 설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앞의 두 전시와 달리 회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시간성이 배제된 화이트큐브에서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성이 어떤 방식으로 독특한 효과를 산출할지 무척 기대된다.
장혜림&Art.Sun
TRADITIONAL : MUSEUM
  • 백남준아트센터
  •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 영은미술관

다른 한 축은 전통예술이 미술관으로 들어갔을 때 확장될 가능성의 영역이다. 물론 미술과 전통예술이 결합하고, 공연장이 아닌 미술관에서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 급진성이 무조건 담보되지는 않는다. 급진성은 이보다 훨씬 정교한 장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전통예술이 미술관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던 장르 간 결합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함께 고민해 결과물로 제시한다면 다른 융합 프로젝트와 차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많은 과제가 수반된다. 먼저 신진예술가들은 모두 음악이나 무용의 문법을 체화하고, 기본적으로 프로시니엄 무대에 적합한 훈련된 신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미술관은 시간성이 배제된 공간으로, 시간성을 의도한 공연장과는 전혀 다른 맥락을 가진 공간이다. 단순히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관객들을 움직이게 하는 시도, 음악이나 무용을 미술과 함께 성기게 나열해 놓는 시도는 이제 시효가 만료되었다. 결국 미술관에서의 공연이 성공적이려면 미술관의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본인에게 체화된 공연예술의 문법에 정면으로 도전하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비틀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고민의 종착점은 보편적인 전통예술 공연이 놓치고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

문화공간음악회에는 단순히 미술관에서 하는 공연 이상의 의미가 있으리라 예상한다. 모든 기획은 그 기획을 실현하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그들이 지켜내려는 가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선발된 세 신진단체의 잠재력에 이들에게 적합한 멘토링 시스템이 더해져 흥미로운 결과물이 탄생할 것이다. 그간 수많은 장르 간 결합이 ‘전통예술의 도구화’로 귀결되는 상황을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이 프로젝트는 협업의 목적이 시·청각적으로 풍성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완결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작은 선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본래 전통예술이 가지고 있던 면면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재발견하는 장이 되리라 믿는다. 단언컨대 그 방식은 작거나 사소한 것, 나아가 침묵하는 것이라도 좋다. 정말로 새로운 것들은 우리의 감각을 빼앗지 않은 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므로.

공연안내문화공간음악회 <신진X미술관>
  • 공연2019. 9. 15 (일) 14:00/16:00 백남준아트센터
  • 2019. 10. 5 (토) 14:00/17:00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 2019. 10. 26 (토) 14:00/16:00 영은미술관
  • 관람전체관람가 | 무료
  • 문의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02-580-3281
  • 성혜인(음악평론가)
  •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웹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론으로 포섭되지 못한 전통음악의 미세한 잔해들을 건져 올려 발화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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